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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날이 계속되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면 아직 가보지 못한 스페인이 문득 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 곳에 가면 기분이 한껏 좋아질 것 같은 환상이 남아 있는 것은 어렸을 때 본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때문입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이 울렁거렸는데 그 느낌이 어느 순간부터 스페인에 가면 해결될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번 계획을 세웠다가 못 가고 말았는데 기회가 또 오겠지요.

스페인 화가 비센테 팔마롤리 (Vicente Palmaroli González / 1834~1896)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상사병 Lovesick / 63.2cm x 78.7cm / oil on panel

신부님이 소녀의 맥을 짚어보고 있습니다.

소녀의 엄마인 듯한 여인은 그 순간도 기다릴 수가 없었는지 신부님의 옷을 잡고 무슨 병인지 물어 보고 있습니다.

살짝 들린 한쪽 발에서 여인의 다급함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신부님 얼굴을 보니 도대체 모르겠다는 표정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지요. 소녀의 병은 몸의 병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거든요.

상사병에 걸려 본 적이 없는 제가 소녀의 상태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헤어지고 나서 견딜 수가 없어 50일 넘게 술을 마실 때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시간만이 해결했습니다.

상사병은 열정과 좌절이 정면으로 부딪칠 때 남는 지독한 마음의 상처입니다.

누구일까요? 소녀의 마음의 상처를 준 그 사람.

팔마롤리는 마드리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게타노는 이탈리아 사람으로 화가이자 석판화가였습니다.

미술사를 읽다 보면 이탈리아 화가들이 스페인에 가서 활약하는 경우가 있는데 혹시 그런 화가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당연히 그의 아버지는 팔마롤리에게 첫 번째 미술 선생님이었습니다.

팔마롤리는 산페르난도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는데 함께 입학했던 마드라조는 훗날 스페인 아카데미즘 화풍의

대가가 됩니다.

 

 

 

 

발레리나 A Ballerina / oil on panel

연습 중에 잠시 몸을 쉬기 위해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작은 상자를 꺼냈습니다. 무엇이 들었을까요?

방금 받은 것이라기 보다는 오래 전부터 시간이 날 때면 늘 꺼내 보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몸이, 마음이 힘들 때 위로가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대개 손 때 묻은 것들이죠. 그리고 행복한 기억이 함께 담긴 것들입니다.

그 것은 꿈을 위해 지금의 순간을 견디는 진통제이기도 합니다. 어떤 것들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발레리나의 빛이 반사되는 타이즈 질감을 묘사한 작가의 솜씨에 한 동안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팔마롤리가 열 아홉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아버지가 떠난 자리를 메우기 위해 가족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원래부터 로마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어

했던 그의 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4년간의 노력 끝에 팔마롤리는 왕족의 지원을 받아 로마 유학을 떠납니다.

간절함이 극에 달하면 뭔가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해변에서 At The Beach / 29.8cm x 40.6cm / oil on panel

바람이 제법 부는 해변, 멋지게 차려 입은 여인의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당기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일본식 양산을 든 여인은 또 한 손에 망원경처럼 보이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앞에 놓인 꽃다발을 보니 누군가 여인에게 주고 간 것 같은데 여인의 시선이 향하는 곳, 혹시 그 사람이 있는 것 아닐까요?

오른쪽에 그런 여인을 힐끗 거리는 신문을 든 남자가 보입니다. 여인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한 발 늦은 것 같습니다.

시선의 방향이 같기 때문입니다. 같은 방향의 시선은 오랜 시간 같이 산 사람들의 것이거든요.

팔마롤리는 이탈리아에서 10년 가까이 체류하는데 전반부 6년은 로마, 후반부 4년은 피렌체와 나폴리에서 머물며 공부를 합니다.

로마에 머물 때는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Antico Caffè Greco (오래된 그리스 카페)’에서 열리는 스페인 출신 화가들 모임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이탈리아에 머물다가 잠시 스페인으로 돌아 온 팔마롤리는 이탈리아에서 그린 작품 두 점을 전시회에 출품, 금메달을 수상합니다.

목에 힘 좀 주었을 것 같습니다.

 

 

 

 

 

여름 Summer Days oil on panel

여름 해변에서 아주 멋지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 여인을 만났습니다.

책을 여러 권 들고 나온 것을 보니 잠깐 바람이나 만나러 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삽과 작은 바구니까지 보입니다.

제대로 여름 해변을 즐길 작정을 한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바람 좋은 해변에 비스듬히 누워 하루 꼬박 책도 읽고 잠깐의 잠도 자 보는 호사를 누려 본 적이 한 번 도 없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바빴기에 그런 여유 한 번 가져 보지 못했을까요? 제대로 살고 있기나 한 걸까요?

문득 그림 속 여인의 서늘한 눈빛이 느껴집니다.

좀 한심해 보이는군요!

여인이 제게 건네는 말이었습니다.

10년의 이탈리아 생활을 끝내고 마드리드로 돌아 온 팔마롤리는 곧바로 마드리드 상류사회와 연결됩니다.

1867, 파리 만국박람회에 스페인 대표단으로 참가한 그는 2등상을 수상합니다.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에서도 화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지요. 파리에 머무는 동안 메소니에(http://blog.naver.com/dkseon00/140088555015) 를 만나게 되는데

팔마롤리는 그로부터 영향을 받게 됩니다. 팔마롤리는 차츰 초상화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합니다.

 

 

 

 

편지 The Letter / 66cm x 50cm / oil on panel

편지를 다 읽고 난 여인의 눈빛이 공허합니다. 자세히 보니 눈 주변으로 화장이 흘러 내린 듯한 검은 자국이 보입니다.

편지를 읽다가 울었군요 ----

집에서도 읽었던 것이었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편지를 가지고 바닷가로 나와서 다시 보았지만 내용이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편지의 내용을 알 길이 없지만 그녀의 뒤편으로 펼쳐진 하늘처럼 우울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런 순간들이 모여 조금씩 마음이 단단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훗날 일입니다. , 이제 어떻게 마음을 추슬러볼까요?

앞으로 만날 많은 일 중 겨우 하나를 지났을 뿐이라고 말하면 위로가 될까요?

1872. 서른 여덟이 되던 해 팔마롤리는 산페르난도 왕립 미술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됩니다.

그러나 그의 행복한 순간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다음 해 스페인 제1공화국이 탄생한 것이죠. 비록 2년도 안돼 다시 왕정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왕을 몰아내고 공화국이 된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불안한 시류 탓인지 그림에 대한 주문이 들쑥날쑥 했고 팔마롤리는 스페인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주의 깊은 학생 The Attentive Student / 91.4cm x 69.9cm / oil on panel

신부님의 강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책을 펴 놓고 앉은 신부님의 옷으로 봐서는 추기경처럼 보입니다.

지체 높은 집안의 소녀에게 특별히 시간을 할애해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소녀의 표정이 묘합니다.

몸을 살짝 앞으로 굽히고 두 손을 맞잡은 자세로 봐서는 주의 깊게 말씀을 듣고 있는 것 같은데,

소녀의 눈을 보니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봤다면 금방 알아 차릴 수 있을 법 하지만 옆에 선 어머니는

그런 소녀를 대견스럽게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소녀의 나이에는 보이지 않는 신의 세계보다는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 일이 훨씬 더 궁금하고 재미있고 그리고 고민의 대상이

되지요. 신께서는 늘 우리 옆에 계시지만 간절하게 찾기 전까지는 절대로 모습을 안 보여 주시는 것 같더군요.

로마를 거쳐 파리에 정착한 팔마롤리는 쉬지 않고 작품 제작에 매달렸습니다. 그가 집중한 작품은 즐겁고 기쁜 내용이 담긴

작은 크기의 그림들이었습니다. 거실의 작은 벽을 장식할 수 있었던 그의 작품들은 파리의 화상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곧 그는 이 부문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10년 가까이 많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림에 대한 대중들의 선호가 바뀌면서 주문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팔마롤리는 붓을 놓을 결심을 하는데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발 The Haircut / 78.7cm x 63.2cm / oil on canvas

이발을 하고 나면 일주일은 기분이 좋습니다. 그림 속 수도자도 그 것을 아는지 아주 기분 좋은 얼굴입니다.

우산을 가지고 온 것을 보면 좋은 날씨는 아닌 것 같은데 굳이 여기까지 온 것을 보면 이발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싶었는데,

이발하는 여인을 올려다 보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는 것을 뭐라고 할 것은 아니지만 본인도 스스로 어색했는지 깎지 낀 손가락을 가슴에 올렸습니다.

즐거운 순간입니다. 그런데 벽에 걸린 그림이 의미심장합니다.

성난 소에 받혀 떨어져 나가는 투우사의 모습이 보입니다. 누가 황소이고 누가 투우사일까요?

로마에 있는 스페인 아카데미의 책임자로 팔마롤리를 임명함에 따라 팔마롤리는 로마로 이동하게 됩니다.

10년간 공부하던 곳의 아카데미 책임자가 되었으니까 일종의 영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10년간 아카데미 책임자로 일하던 그에게

이 번에는 프라도 미술관 책임자의 업무가 주어집니다.

스페인 왕궁에서도 팔마롤리가 가지고 있는 행정 능력을 높이 평가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화가의 화실 모델 Model in the Studio of the Painter / oil on panel / 1880

모델로 서 있다가 잠시 의자에 앉아 쉬는 것일까요? 일본풍의 옷과 부채를 든 여인이 의자에 앉아 이젤에 걸린 그림을 보고 있습니다.

이젤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여인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놓여 있고 바닥에는 소품으로 사용되었을 책과 소품들이 어지럽습니다.

아직은 모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림 속 여인의 모습이 점점 또렷해지겠지요.

흐릿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간혹 세면기 위의 거울에 김이 서려 제 모습이 희미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맨 얼굴보다는 그 것이 좋을 때도 있더군요. 모호함이 명징함보다 좋은 것은 상상이 들어갈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여인의 눈이 슬며시 감긴 것처럼 보입니다.

힘들었군요 ----

프라도 미술관의 책임자가 된 팔마롤리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습니다.

소장할 가치가 있는 작품을 결정하고 미술관 건물의 개,보수도 그의 몫이었습니다.

팔마롤리 덕분에 프라도 미술관의 작품 수가 증가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자신의 일에 아주 열성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화가가 아니었으면 아주 훌륭한 행정가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음악회 The Concert / 1880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방 안 가득히 선율에 차 오르자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표정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소파에 앉은 여인은 음악이 보여주는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모습이고 그 뒤에 팔짱을 끼고 있는 사내도 어느 순간 심각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맨 오른쪽 검은 옷의 남자는 아직까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 듯 손을 허리에 올려 놓았습니다.

아직 받아 들일 준비가 안 되었다는 뜻이지요. 정작 음악에 가장 깊숙하게 빠져 든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왼쪽 출입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한 순간의 소리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연주하는 여인 쪽으로 기울이고 있습니다.

마음을 여는 정도에 따라 몸 안으로 들어 오는 것이 어디 음악뿐이겠습니까?

팔마롤리는 젊어서 그림의 주제를 확대하기 위해 모로코를 여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역사화 분야에 뛰어들고 싶었기 때문인데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초상화와 풍속화가 그의 재능이 빛날 수 있는

분야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스페인 대중들은 팔마롤리가 파리와 이탈리아에서 거둔 그의 성공을 잘 몰랐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이 외국에 있었던 시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고백 The Confession / oil on canvas / 1883

소년의 목소리에 턱을 괴고 있는 여인의 눈이 별처럼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그 남자의 고백 때문입니다.

직접 만나 고백할 용기가 아직 없는 그 남자가 소년을 메신저로 삼은 것 같습니다.

혹시 소년 자신의 이야기일까? 라고 상상을 해 보았지만 나이 차이가 너무 커 보입니다.

물론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었던 시대였거든요.

누군가의 고백을 듣는 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동시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고백은 가슴에 평생 숨겨 두어야 할

두 사람만의 비밀일 때가 많기 때문이죠.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19세기 해변에 가면 참 재미있는 의자를 만날 수 있었겠습니다. 비치 파라솔 보다 훨씬 낭만적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븃터치가 자유스러워지던 팔마롤리는 연극을 보다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집니다.

그리고 몇 달간의 투병 생활 끝에 예순 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화가와 미술관의 책임자로 열심히 활동하던 그에게는 너무 아쉬운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프라도 미술관에 가게 되면 팔마롤리가 떠 오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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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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