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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간직하고 싶은 2014년의 그림들

화가들의 이야기를 처음 시작할 때 제가 계획했던 것은 1주일에 1명의 화가를 찾아 보는 것이었습니다.

1년에 50명 정도를 예상했고 500명 정도가 되는 10년이면 이 이야기를 마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올 한 해 몇 명의 화가를 공부했을까 궁금해서 세어 보았더니 28명입니다. 목표치의 50%를 간신히 넘겼더군요.

게으름이 늘어 난 것도 문제이지만 하고 있는 업무의 양이 점점 많아진 것과 이런 저런 인연에 더 엮이면서

그만큼 공부할 시간을 줄인 것이 가장 원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소중한 것들의 순서를 다시 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1년간 만났던 작품들 중에서 특히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소개했던 ​모든 작품들이 다 의미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머리 속에서 맴도는 것들입니다.

다시 2015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세페 아바티                     Giuseppe Abbati

피아젠티나의 우유 배달부     The milkman in Piagentina / oil on canvas / 1864

 

피렌체 지역 피아젠티나의 햇빛이 내리는 길 위, 노인이 우유가 실린 수레를 밀고 있습니다.

길에는 먼저 지나간 수레 자국이 선명합니다. 며칠 전 비가 내리고 그대로 굳어 버린 흔적이겠지요.

하나 하나 살펴보면 부드럽고 고운 색들입니다. 맑은 햇빛이 가득한데도 느낌은 적막하고 쓸쓸합니다. 묘한 울림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림 속 노인처럼 누군가 먼저 지나갔을 그 길을 혼자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삐걱거리는 수레 바퀴 소리가 벽을 타고 마을 골목 길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조제프 파커슨                                 Joseph Farquharson DL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차가운 바람   Cauld Blaws the Wind Frae East to West

 

그림의 제목은 스코틀랜드의 민족 시인 로버트 번스 (Robert Burns)의 시 ‘Up In The Morning Early’의 첫 구절입니다.

고개를 넘어 가는 가족에게 차가운 바람이 몰아 쳤습니다. 바람만 부는 것이 아니라 비도 섞였는지 길 위가 미끄럽습니다.

짐을 진 아버지는 벌써 고개를 넘어 섰고 아이를 업은 엄마는 다른 한 손으로 아이 손을 굳게 잡고 있는데

뒤따라 오는 아이와 걸음을 맞추고 있습니다.

엄마의 날리는 옷자락과 한 손으로 모자를 누르고 있는 소녀의 몸짓에서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부는지 짐작이 됩니다.

깊은 가을,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에 온 가족이 길을 떠나야 할 만큼 절박한 사정이 이들에게 있는 것일까요?

살면서 힘든 고갯길 한 두 번 넘는 것은 아니지만 날씨가 마음에 걸립니다.

고개 너머 그들이 가는 곳에는 모든 것이 평온했으면 좋겠습니다.

 

 

 

 

 

 

빅토르 바스네초프      Viktor Vasnetsov

기쁨과 슬픔의 새       The birds of joy and sorrow / oil on canvas / 1896

 

한 나무에 기쁨과 슬픔의 새가 나란히 앉아 각자의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밝고 환한 얼굴의 기쁨의 새는 부드럽고 여유로워 보이는데 반해 슬픔의 새는 퀭한 눈으로 안간힘을 다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그녀 자신이 더 슬퍼 보입니다. 슬픔은 슬픔 자신도 슬프게 하는 모양입니다.

문득 슬픔과 기쁨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처럼 나란히 다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느냐에 따라 기쁨이 올 수 도 있고 슬픔이 올 수도 있겠지요.

무슨 소리를 들을 것인가는 결국 자신의 몫입니다.

 

 

 

 

 

 

토마스 벤자민 케닝턴          Thomas Benjamin Kennington

즐거운 마음은 오래 갑니다    A Merry Heart Goes a Long Way / oil on canvas / 1912

 

녹슨 그릇을 닦는 할아버지의 표정은 진지하고 이미 닦아 놓은 그릇을 든 소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합니다.

녹을 벗기는 일은 지나간 세월을 벗기는 일이자 새로운 준비를 앞둔 의식이죠.

손등에 파란 힘줄이 돋아 날만큼 힘주어 그릇 청소를 하는 할아버지는 소녀에게 그릇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시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은 세월의 간극이 있을 것도 같은데 할아버지의 말씀은 그 것을 훌쩍 뛰어 넘었고

두 사람 모두에게 지금은 즐거운 순간입니다.

할아버지보다 더 오래 되었을 그릇이 새 그릇처럼 바뀌는 것처럼 우리 사는 세상도 늘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녹을 제거해야 하는데

잘 제거 되고 있는 걸까요?

 

 

 

 

 

 

스벤 리카르드 베르그   Sven Richard Bergh

북유럽의 여름 저녁      Nordic Summer Evening / oil on canvas / 1889~1900

 

여름 저녁, 시원한 바람이 호수를 건너 왔습니다. 물끄러미 호수를 내려다 보는 두 남녀의 옷과 발 밑으로 저녁 햇살이 내려 앉았습니다.

시선을 멀리 돌려 보면 숲이 하늘과 닿은 곳에는 지는 햇빛이 걸렸고 그 위 하늘에는 저녁 느낌이 물씬 묻어 있습니다.

맑고 고요한 풍경 속에는 묘한 긴장감이 있습니다.

남녀의 시선은 엇갈린 채 남자는 팔짱을 끼었고 여인은 가슴을 내민 채로 가볍게 뒷짐을 지고 있습니다.

잠시 말을 잃어 버린 것 같은 두 사람의 관계가 궁금합니다. 또 다른 에로티시즘이 녹아 있다는 평도 있지만

제가 읽은 두 사람의 모습은 애써 감정을 참고 있는 듯 합니다. 감정의 분화가 일어나기 직전의 긴장감이 화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 작품 속에 묘사된 북유럽 풍경 속의 빛 (Nordic Light)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스칸다니비아 반도의 화가들이 즐겨 사용했던

기법이었지요.

 

 

 

 

 

 

피터 일스테드                         Peter Ilsted

창문 옆에서 뜨개질 하는 여인    Woman knitting by a window / 1902

 

밤은 깊었는데 여인의 뜨개질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등 주위에 설치되어 있는 주황색 천은 마치 빛을 가득 담은 거대한 풍선 같습니다.

빛이 한 곳에 모이자 시선도 자연스럽게 여인의 등으로 향하게 됩니다. 누구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엮고 있는 것일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깊어지는 정적을 깨는 것은 간혹 들리는 여인의 가는 숨소리와 실타래가 풀리는 소리뿐입니다.

그런 여인을 위해 창가에 세워 놓은 화병 속 꽃 두 송이, 손을 활짝 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고개 한 번 들어 꽃에 시선을 줄만한데 창에 비친 여인의 모습은 마치 조각처럼 굳어 있습니다.

그녀의 등을 타고 흐르는 것, 외로움이 아니었기를 빕니다.

 

 

 

 

 

 

폼페오 마리아니  Pompeo Mariani

뱃사람의 이별    The Sailor's Farewell / 1897

 

아직 물러 나지 않은 간밤의 구름들 사이로 멀리 아침 해가 떠 오르고 있습니다.

바다로 떠날 준비를 하는 배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부두 위, 헤어지는 남녀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기댄 여인이나 그런 여인의 손을 잡고 있는 남자의 지금 마음이 어떨지 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살면서 수 많은 이별을 경험했고 이제는 면역이 생겨서 흔들릴 것 같지 않은데도 여전히 이별은 쉽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마음의 크기만큼 비는 곳이 생기기 때문이겠지요.

꼭 다시 만난다는 약속만 지켜진다면 잠시의 이별은 견딜 만 합니다. ,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08

일리야 오스트로우호프   Ilya Ostroukhov

황금빛 가을                  Golden Autumn / 1887

 

처음 이 작품을 보는 순간 혹시 사진이 아닐까 하고 그림을 확대 해 보았습니다. 눈부시게 화려한 모습입니다.

가지고 있는 몸 속의 모든 힘을 다 뿜어 내는 것 같은 잎들에게서 문득 경건함이 느껴집니다.

마지막은 늘 이렇게 화려해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일몰과 가을의 단풍을 볼 때입니다.

곧 떨어져 미라처럼 마를 잎들의 모습은 아주 멋진 삶을 살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숲 사이로 난 작은 길 위, 산새도 잠시 가을 속으로 깊게 빠져 든 모습입니다.

 

 

 

 

 

 

에렉 베렌스키올드               장례식

Erik Theodor Werenskiold       The Funeral

 

방금 한 영혼이 또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마르지 않은 작은 무덤 위, 흙으로 십자가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올려 놓은 보라색 꽃 한 다발, 소박한 장례식입니다.

목사님이 성경을 읽는 동안 길을 떠난 고인에 대한 기억들은 각자의 몫입니다. 사방을 둘러 보니 여기 저기 무덤들이 보입니다.

그 사이마다 작은 흰 꽃들이 피었습니다. 외롭지 않고 누추하지도 않은 곳입니다.

생각해보면 이 곳에서 한 우주가 끝났지만 또 다른 세계에서는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10

조지 포크너 웨더비   George Faulkner Wetherbee

채석장 노동자         The Quarry Workers / 65cm x 50.5cm / watercolor / 1887

 

나 이제 이 일 그만하고 싶어요.

수레에 걸터앉은 젊은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노동으로 다져진 팔에 갑갑함이 묻어 있습니다.

파이프 담뱃대에 담배를 꾹꾹 눌러 담는 그의 얼굴에는 반복되는 일상의 짜증과 보이지 않는 희망에 대한 갈망이 동시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 젊은이를 내려다 보는 사내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말이 없습니다. 그저 차분하게 바라 볼 뿐입니다.

세상에는 내가하고 싶은 일보다할 수 밖에 없는 일이 훨씬 더 많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할 수 밖에 없는 일을 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당분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용기가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생활이라는 것이 저를 그렇게 몰아간 탓도 있었습니다.

제가 젊은이의 옆에 서 있는 남자라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럼 그만 해. 그런데 그 것도 네 자신의 결정이라는 것을 확실히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네가 무엇을 하든 네 결정에 의한 것이면 절대 후회해서는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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