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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말
2015.02.01 17:21

파스텔 아트 작품2015.02.0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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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말



차가운 날이 계속되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면 아직 가보지 못한 스페인이 문득 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 곳에 가면 기분이 한껏 좋아질 것 같은 환상이 남아 있는 것은 어렸을 때 본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때문입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이 울렁거렸는데 그 느낌이 어느 순간부터 스페인에 가면 해결될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번 계획을 세웠다가 못 가고 말았는데 기회가 또 오겠지요.

스페인 화가 비센테 팔마롤리 (Vicente Palmaroli González / 1834~1896)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상사병 Lovesick / 63.2cm x 78.7cm / oil on panel

신부님이 소녀의 맥을 짚어보고 있습니다.

소녀의 엄마인 듯한 여인은 그 순간도 기다릴 수가 없었는지 신부님의 옷을 잡고 무슨 병인지 물어 보고 있습니다.

살짝 들린 한쪽 발에서 여인의 다급함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신부님 얼굴을 보니 도대체 모르겠다는 표정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지요. 소녀의 병은 몸의 병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거든요.

상사병에 걸려 본 적이 없는 제가 소녀의 상태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헤어지고 나서 견딜 수가 없어 50일 넘게 술을 마실 때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시간만이 해결했습니다.

상사병은 열정과 좌절이 정면으로 부딪칠 때 남는 지독한 마음의 상처입니다.

누구일까요? 소녀의 마음의 상처를 준 그 사람.

팔마롤리는 마드리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게타노는 이탈리아 사람으로 화가이자 석판화가였습니다.

미술사를 읽다 보면 이탈리아 화가들이 스페인에 가서 활약하는 경우가 있는데 혹시 그런 화가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당연히 그의 아버지는 팔마롤리에게 첫 번째 미술 선생님이었습니다.

팔마롤리는 산페르난도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는데 함께 입학했던 마드라조는 훗날 스페인 아카데미즘 화풍의

대가가 됩니다.

 

 

 

 

발레리나 A Ballerina / oil on panel

연습 중에 잠시 몸을 쉬기 위해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작은 상자를 꺼냈습니다. 무엇이 들었을까요?

방금 받은 것이라기 보다는 오래 전부터 시간이 날 때면 늘 꺼내 보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몸이, 마음이 힘들 때 위로가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대개 손 때 묻은 것들이죠. 그리고 행복한 기억이 함께 담긴 것들입니다.

그 것은 꿈을 위해 지금의 순간을 견디는 진통제이기도 합니다. 어떤 것들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발레리나의 빛이 반사되는 타이즈 질감을 묘사한 작가의 솜씨에 한 동안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팔마롤리가 열 아홉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아버지가 떠난 자리를 메우기 위해 가족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원래부터 로마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어

했던 그의 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4년간의 노력 끝에 팔마롤리는 왕족의 지원을 받아 로마 유학을 떠납니다.

간절함이 극에 달하면 뭔가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해변에서 At The Beach / 29.8cm x 40.6cm / oil on panel

바람이 제법 부는 해변, 멋지게 차려 입은 여인의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당기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일본식 양산을 든 여인은 또 한 손에 망원경처럼 보이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앞에 놓인 꽃다발을 보니 누군가 여인에게 주고 간 것 같은데 여인의 시선이 향하는 곳, 혹시 그 사람이 있는 것 아닐까요?

오른쪽에 그런 여인을 힐끗 거리는 신문을 든 남자가 보입니다. 여인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한 발 늦은 것 같습니다.

시선의 방향이 같기 때문입니다. 같은 방향의 시선은 오랜 시간 같이 산 사람들의 것이거든요.

팔마롤리는 이탈리아에서 10년 가까이 체류하는데 전반부 6년은 로마, 후반부 4년은 피렌체와 나폴리에서 머물며 공부를 합니다.

로마에 머물 때는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Antico Caffè Greco (오래된 그리스 카페)’에서 열리는 스페인 출신 화가들 모임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이탈리아에 머물다가 잠시 스페인으로 돌아 온 팔마롤리는 이탈리아에서 그린 작품 두 점을 전시회에 출품, 금메달을 수상합니다.

목에 힘 좀 주었을 것 같습니다.

 

 

 

 

 

여름 Summer Days oil on panel

여름 해변에서 아주 멋지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 여인을 만났습니다.

책을 여러 권 들고 나온 것을 보니 잠깐 바람이나 만나러 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삽과 작은 바구니까지 보입니다.

제대로 여름 해변을 즐길 작정을 한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바람 좋은 해변에 비스듬히 누워 하루 꼬박 책도 읽고 잠깐의 잠도 자 보는 호사를 누려 본 적이 한 번 도 없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바빴기에 그런 여유 한 번 가져 보지 못했을까요? 제대로 살고 있기나 한 걸까요?

문득 그림 속 여인의 서늘한 눈빛이 느껴집니다.

좀 한심해 보이는군요!

여인이 제게 건네는 말이었습니다.

10년의 이탈리아 생활을 끝내고 마드리드로 돌아 온 팔마롤리는 곧바로 마드리드 상류사회와 연결됩니다.

1867, 파리 만국박람회에 스페인 대표단으로 참가한 그는 2등상을 수상합니다.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에서도 화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지요. 파리에 머무는 동안 메소니에(http://blog.naver.com/dkseon00/140088555015) 를 만나게 되는데

팔마롤리는 그로부터 영향을 받게 됩니다. 팔마롤리는 차츰 초상화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합니다.

 

 

 

 

편지 The Letter / 66cm x 50cm / oil on panel

편지를 다 읽고 난 여인의 눈빛이 공허합니다. 자세히 보니 눈 주변으로 화장이 흘러 내린 듯한 검은 자국이 보입니다.

편지를 읽다가 울었군요 ----

집에서도 읽었던 것이었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편지를 가지고 바닷가로 나와서 다시 보았지만 내용이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편지의 내용을 알 길이 없지만 그녀의 뒤편으로 펼쳐진 하늘처럼 우울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런 순간들이 모여 조금씩 마음이 단단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훗날 일입니다. , 이제 어떻게 마음을 추슬러볼까요?

앞으로 만날 많은 일 중 겨우 하나를 지났을 뿐이라고 말하면 위로가 될까요?

1872. 서른 여덟이 되던 해 팔마롤리는 산페르난도 왕립 미술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됩니다.

그러나 그의 행복한 순간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다음 해 스페인 제1공화국이 탄생한 것이죠. 비록 2년도 안돼 다시 왕정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왕을 몰아내고 공화국이 된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불안한 시류 탓인지 그림에 대한 주문이 들쑥날쑥 했고 팔마롤리는 스페인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주의 깊은 학생 The Attentive Student / 91.4cm x 69.9cm / oil on panel

신부님의 강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책을 펴 놓고 앉은 신부님의 옷으로 봐서는 추기경처럼 보입니다.

지체 높은 집안의 소녀에게 특별히 시간을 할애해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소녀의 표정이 묘합니다.

몸을 살짝 앞으로 굽히고 두 손을 맞잡은 자세로 봐서는 주의 깊게 말씀을 듣고 있는 것 같은데,

소녀의 눈을 보니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봤다면 금방 알아 차릴 수 있을 법 하지만 옆에 선 어머니는

그런 소녀를 대견스럽게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소녀의 나이에는 보이지 않는 신의 세계보다는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 일이 훨씬 더 궁금하고 재미있고 그리고 고민의 대상이

되지요. 신께서는 늘 우리 옆에 계시지만 간절하게 찾기 전까지는 절대로 모습을 안 보여 주시는 것 같더군요.

로마를 거쳐 파리에 정착한 팔마롤리는 쉬지 않고 작품 제작에 매달렸습니다. 그가 집중한 작품은 즐겁고 기쁜 내용이 담긴

작은 크기의 그림들이었습니다. 거실의 작은 벽을 장식할 수 있었던 그의 작품들은 파리의 화상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곧 그는 이 부문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10년 가까이 많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림에 대한 대중들의 선호가 바뀌면서 주문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팔마롤리는 붓을 놓을 결심을 하는데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발 The Haircut / 78.7cm x 63.2cm / oil on canvas

이발을 하고 나면 일주일은 기분이 좋습니다. 그림 속 수도자도 그 것을 아는지 아주 기분 좋은 얼굴입니다.

우산을 가지고 온 것을 보면 좋은 날씨는 아닌 것 같은데 굳이 여기까지 온 것을 보면 이발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싶었는데,

이발하는 여인을 올려다 보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는 것을 뭐라고 할 것은 아니지만 본인도 스스로 어색했는지 깎지 낀 손가락을 가슴에 올렸습니다.

즐거운 순간입니다. 그런데 벽에 걸린 그림이 의미심장합니다.

성난 소에 받혀 떨어져 나가는 투우사의 모습이 보입니다. 누가 황소이고 누가 투우사일까요?

로마에 있는 스페인 아카데미의 책임자로 팔마롤리를 임명함에 따라 팔마롤리는 로마로 이동하게 됩니다.

10년간 공부하던 곳의 아카데미 책임자가 되었으니까 일종의 영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10년간 아카데미 책임자로 일하던 그에게

이 번에는 프라도 미술관 책임자의 업무가 주어집니다.

스페인 왕궁에서도 팔마롤리가 가지고 있는 행정 능력을 높이 평가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화가의 화실 모델 Model in the Studio of the Painter / oil on panel / 1880

모델로 서 있다가 잠시 의자에 앉아 쉬는 것일까요? 일본풍의 옷과 부채를 든 여인이 의자에 앉아 이젤에 걸린 그림을 보고 있습니다.

이젤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여인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놓여 있고 바닥에는 소품으로 사용되었을 책과 소품들이 어지럽습니다.

아직은 모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림 속 여인의 모습이 점점 또렷해지겠지요.

흐릿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간혹 세면기 위의 거울에 김이 서려 제 모습이 희미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맨 얼굴보다는 그 것이 좋을 때도 있더군요. 모호함이 명징함보다 좋은 것은 상상이 들어갈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여인의 눈이 슬며시 감긴 것처럼 보입니다.

힘들었군요 ----

프라도 미술관의 책임자가 된 팔마롤리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습니다.

소장할 가치가 있는 작품을 결정하고 미술관 건물의 개,보수도 그의 몫이었습니다.

팔마롤리 덕분에 프라도 미술관의 작품 수가 증가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자신의 일에 아주 열성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화가가 아니었으면 아주 훌륭한 행정가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음악회 The Concert / 1880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방 안 가득히 선율에 차 오르자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표정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소파에 앉은 여인은 음악이 보여주는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모습이고 그 뒤에 팔짱을 끼고 있는 사내도 어느 순간 심각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맨 오른쪽 검은 옷의 남자는 아직까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 듯 손을 허리에 올려 놓았습니다.

아직 받아 들일 준비가 안 되었다는 뜻이지요. 정작 음악에 가장 깊숙하게 빠져 든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왼쪽 출입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한 순간의 소리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연주하는 여인 쪽으로 기울이고 있습니다.

마음을 여는 정도에 따라 몸 안으로 들어 오는 것이 어디 음악뿐이겠습니까?

팔마롤리는 젊어서 그림의 주제를 확대하기 위해 모로코를 여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역사화 분야에 뛰어들고 싶었기 때문인데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초상화와 풍속화가 그의 재능이 빛날 수 있는

분야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스페인 대중들은 팔마롤리가 파리와 이탈리아에서 거둔 그의 성공을 잘 몰랐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이 외국에 있었던 시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고백 The Confession / oil on canvas / 1883

소년의 목소리에 턱을 괴고 있는 여인의 눈이 별처럼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그 남자의 고백 때문입니다.

직접 만나 고백할 용기가 아직 없는 그 남자가 소년을 메신저로 삼은 것 같습니다.

혹시 소년 자신의 이야기일까? 라고 상상을 해 보았지만 나이 차이가 너무 커 보입니다.

물론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었던 시대였거든요.

누군가의 고백을 듣는 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동시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고백은 가슴에 평생 숨겨 두어야 할

두 사람만의 비밀일 때가 많기 때문이죠.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19세기 해변에 가면 참 재미있는 의자를 만날 수 있었겠습니다. 비치 파라솔 보다 훨씬 낭만적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븃터치가 자유스러워지던 팔마롤리는 연극을 보다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집니다.

그리고 몇 달간의 투병 생활 끝에 예순 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화가와 미술관의 책임자로 열심히 활동하던 그에게는 너무 아쉬운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프라도 미술관에 가게 되면 팔마롤리가 떠 오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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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말
2015.01.07 14:15

간직하고 싶은 2014년의 그림들 작품2015.01.07 14:15




화가들의 이야기를 처음 시작할 때 제가 계획했던 것은 1주일에 1명의 화가를 찾아 보는 것이었습니다.

1년에 50명 정도를 예상했고 500명 정도가 되는 10년이면 이 이야기를 마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올 한 해 몇 명의 화가를 공부했을까 궁금해서 세어 보았더니 28명입니다. 목표치의 50%를 간신히 넘겼더군요.

게으름이 늘어 난 것도 문제이지만 하고 있는 업무의 양이 점점 많아진 것과 이런 저런 인연에 더 엮이면서

그만큼 공부할 시간을 줄인 것이 가장 원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소중한 것들의 순서를 다시 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1년간 만났던 작품들 중에서 특히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소개했던 ​모든 작품들이 다 의미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머리 속에서 맴도는 것들입니다.

다시 2015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세페 아바티                     Giuseppe Abbati

피아젠티나의 우유 배달부     The milkman in Piagentina / oil on canvas / 1864

 

피렌체 지역 피아젠티나의 햇빛이 내리는 길 위, 노인이 우유가 실린 수레를 밀고 있습니다.

길에는 먼저 지나간 수레 자국이 선명합니다. 며칠 전 비가 내리고 그대로 굳어 버린 흔적이겠지요.

하나 하나 살펴보면 부드럽고 고운 색들입니다. 맑은 햇빛이 가득한데도 느낌은 적막하고 쓸쓸합니다. 묘한 울림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림 속 노인처럼 누군가 먼저 지나갔을 그 길을 혼자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삐걱거리는 수레 바퀴 소리가 벽을 타고 마을 골목 길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조제프 파커슨                                 Joseph Farquharson DL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차가운 바람   Cauld Blaws the Wind Frae East to West

 

그림의 제목은 스코틀랜드의 민족 시인 로버트 번스 (Robert Burns)의 시 ‘Up In The Morning Early’의 첫 구절입니다.

고개를 넘어 가는 가족에게 차가운 바람이 몰아 쳤습니다. 바람만 부는 것이 아니라 비도 섞였는지 길 위가 미끄럽습니다.

짐을 진 아버지는 벌써 고개를 넘어 섰고 아이를 업은 엄마는 다른 한 손으로 아이 손을 굳게 잡고 있는데

뒤따라 오는 아이와 걸음을 맞추고 있습니다.

엄마의 날리는 옷자락과 한 손으로 모자를 누르고 있는 소녀의 몸짓에서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부는지 짐작이 됩니다.

깊은 가을,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에 온 가족이 길을 떠나야 할 만큼 절박한 사정이 이들에게 있는 것일까요?

살면서 힘든 고갯길 한 두 번 넘는 것은 아니지만 날씨가 마음에 걸립니다.

고개 너머 그들이 가는 곳에는 모든 것이 평온했으면 좋겠습니다.

 

 

 

 

 

 

빅토르 바스네초프      Viktor Vasnetsov

기쁨과 슬픔의 새       The birds of joy and sorrow / oil on canvas / 1896

 

한 나무에 기쁨과 슬픔의 새가 나란히 앉아 각자의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밝고 환한 얼굴의 기쁨의 새는 부드럽고 여유로워 보이는데 반해 슬픔의 새는 퀭한 눈으로 안간힘을 다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그녀 자신이 더 슬퍼 보입니다. 슬픔은 슬픔 자신도 슬프게 하는 모양입니다.

문득 슬픔과 기쁨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처럼 나란히 다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느냐에 따라 기쁨이 올 수 도 있고 슬픔이 올 수도 있겠지요.

무슨 소리를 들을 것인가는 결국 자신의 몫입니다.

 

 

 

 

 

 

토마스 벤자민 케닝턴          Thomas Benjamin Kennington

즐거운 마음은 오래 갑니다    A Merry Heart Goes a Long Way / oil on canvas / 1912

 

녹슨 그릇을 닦는 할아버지의 표정은 진지하고 이미 닦아 놓은 그릇을 든 소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합니다.

녹을 벗기는 일은 지나간 세월을 벗기는 일이자 새로운 준비를 앞둔 의식이죠.

손등에 파란 힘줄이 돋아 날만큼 힘주어 그릇 청소를 하는 할아버지는 소녀에게 그릇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시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은 세월의 간극이 있을 것도 같은데 할아버지의 말씀은 그 것을 훌쩍 뛰어 넘었고

두 사람 모두에게 지금은 즐거운 순간입니다.

할아버지보다 더 오래 되었을 그릇이 새 그릇처럼 바뀌는 것처럼 우리 사는 세상도 늘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녹을 제거해야 하는데

잘 제거 되고 있는 걸까요?

 

 

 

 

 

 

스벤 리카르드 베르그   Sven Richard Bergh

북유럽의 여름 저녁      Nordic Summer Evening / oil on canvas / 1889~1900

 

여름 저녁, 시원한 바람이 호수를 건너 왔습니다. 물끄러미 호수를 내려다 보는 두 남녀의 옷과 발 밑으로 저녁 햇살이 내려 앉았습니다.

시선을 멀리 돌려 보면 숲이 하늘과 닿은 곳에는 지는 햇빛이 걸렸고 그 위 하늘에는 저녁 느낌이 물씬 묻어 있습니다.

맑고 고요한 풍경 속에는 묘한 긴장감이 있습니다.

남녀의 시선은 엇갈린 채 남자는 팔짱을 끼었고 여인은 가슴을 내민 채로 가볍게 뒷짐을 지고 있습니다.

잠시 말을 잃어 버린 것 같은 두 사람의 관계가 궁금합니다. 또 다른 에로티시즘이 녹아 있다는 평도 있지만

제가 읽은 두 사람의 모습은 애써 감정을 참고 있는 듯 합니다. 감정의 분화가 일어나기 직전의 긴장감이 화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 작품 속에 묘사된 북유럽 풍경 속의 빛 (Nordic Light)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스칸다니비아 반도의 화가들이 즐겨 사용했던

기법이었지요.

 

 

 

 

 

 

피터 일스테드                         Peter Ilsted

창문 옆에서 뜨개질 하는 여인    Woman knitting by a window / 1902

 

밤은 깊었는데 여인의 뜨개질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등 주위에 설치되어 있는 주황색 천은 마치 빛을 가득 담은 거대한 풍선 같습니다.

빛이 한 곳에 모이자 시선도 자연스럽게 여인의 등으로 향하게 됩니다. 누구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엮고 있는 것일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깊어지는 정적을 깨는 것은 간혹 들리는 여인의 가는 숨소리와 실타래가 풀리는 소리뿐입니다.

그런 여인을 위해 창가에 세워 놓은 화병 속 꽃 두 송이, 손을 활짝 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고개 한 번 들어 꽃에 시선을 줄만한데 창에 비친 여인의 모습은 마치 조각처럼 굳어 있습니다.

그녀의 등을 타고 흐르는 것, 외로움이 아니었기를 빕니다.

 

 

 

 

 

 

폼페오 마리아니  Pompeo Mariani

뱃사람의 이별    The Sailor's Farewell / 1897

 

아직 물러 나지 않은 간밤의 구름들 사이로 멀리 아침 해가 떠 오르고 있습니다.

바다로 떠날 준비를 하는 배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부두 위, 헤어지는 남녀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기댄 여인이나 그런 여인의 손을 잡고 있는 남자의 지금 마음이 어떨지 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살면서 수 많은 이별을 경험했고 이제는 면역이 생겨서 흔들릴 것 같지 않은데도 여전히 이별은 쉽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마음의 크기만큼 비는 곳이 생기기 때문이겠지요.

꼭 다시 만난다는 약속만 지켜진다면 잠시의 이별은 견딜 만 합니다. ,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08

일리야 오스트로우호프   Ilya Ostroukhov

황금빛 가을                  Golden Autumn / 1887

 

처음 이 작품을 보는 순간 혹시 사진이 아닐까 하고 그림을 확대 해 보았습니다. 눈부시게 화려한 모습입니다.

가지고 있는 몸 속의 모든 힘을 다 뿜어 내는 것 같은 잎들에게서 문득 경건함이 느껴집니다.

마지막은 늘 이렇게 화려해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일몰과 가을의 단풍을 볼 때입니다.

곧 떨어져 미라처럼 마를 잎들의 모습은 아주 멋진 삶을 살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숲 사이로 난 작은 길 위, 산새도 잠시 가을 속으로 깊게 빠져 든 모습입니다.

 

 

 

 

 

 

에렉 베렌스키올드               장례식

Erik Theodor Werenskiold       The Funeral

 

방금 한 영혼이 또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마르지 않은 작은 무덤 위, 흙으로 십자가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올려 놓은 보라색 꽃 한 다발, 소박한 장례식입니다.

목사님이 성경을 읽는 동안 길을 떠난 고인에 대한 기억들은 각자의 몫입니다. 사방을 둘러 보니 여기 저기 무덤들이 보입니다.

그 사이마다 작은 흰 꽃들이 피었습니다. 외롭지 않고 누추하지도 않은 곳입니다.

생각해보면 이 곳에서 한 우주가 끝났지만 또 다른 세계에서는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10

조지 포크너 웨더비   George Faulkner Wetherbee

채석장 노동자         The Quarry Workers / 65cm x 50.5cm / watercolor / 1887

 

나 이제 이 일 그만하고 싶어요.

수레에 걸터앉은 젊은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노동으로 다져진 팔에 갑갑함이 묻어 있습니다.

파이프 담뱃대에 담배를 꾹꾹 눌러 담는 그의 얼굴에는 반복되는 일상의 짜증과 보이지 않는 희망에 대한 갈망이 동시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 젊은이를 내려다 보는 사내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말이 없습니다. 그저 차분하게 바라 볼 뿐입니다.

세상에는 내가하고 싶은 일보다할 수 밖에 없는 일이 훨씬 더 많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할 수 밖에 없는 일을 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당분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용기가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생활이라는 것이 저를 그렇게 몰아간 탓도 있었습니다.

제가 젊은이의 옆에 서 있는 남자라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럼 그만 해. 그런데 그 것도 네 자신의 결정이라는 것을 확실히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네가 무엇을 하든 네 결정에 의한 것이면 절대 후회해서는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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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의 물결이 휩쓸고 있던 19세기의 유럽,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여류 예술가를 만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사회는 아직도 여성에게 보수적이었고 예술의 주체보다는 대상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강했지요.

그런 와중에도 화가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류 화가가 있습니다.

노르웨이 출신의 하리어트 바케르 (Harriet Backer / 1845~1932)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참 오랜만에 만나는 여류화가입니다.

 

 

옅은 색의 목초지 위에서 On the pale meadow / 1886~1887

마치 연두색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한 목초지에 여인들이 등장했습니다. 통 안에 든 것이 빨래였군요!

바지랑대를 세우고 빨래 줄을 걸고 그 위에 널기에는 너무 길어 목초지로 가져 나온 것 같습니다.

풀 위에 길게 펼쳐 놓은 다음 다 마르고 나면 툭툭 털어 접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딸들이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얼굴이 조금 힘들어 보입니다. 사실 빨래만큼 힘든 가사 노동도 많지 않습니다.

세탁기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진정한 여성 해방의 시대가 왔다고 했는데, 세탁기가 넘쳐나는 지금,

정말로 여성들이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림이지만 초록을 보니 살 것 같습니다.

바케르는 노르웨이 홀메스트란 이라는 곳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열 두 살 때 오슬로로 이사를 가는데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녀에 대한 미술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감안한다면 그녀에게 이런 교육의 기회가 마련된 것도 집안의 경제력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했었겠지요.

 

 

 

푸른 실내 풍경 Blue Interior / 84cm x 66cm / 1883

빛이 드는 큰 창을 앞에 두고 바느질 하는 여인의 모습 주변은 온통 푸른 색입니다.

의자와 커튼 그리고 여인의 옷까지 같은 색 계열입니다.

여인의 뒤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고 그 것을 통해 비쳐진 실내도 푸른색이 감돌고 있습니다. 마치 깊은 바닷속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그 느낌은 어둡다기 보다는 정갈합니다.

녹색의 화분과 붉은 색 칠을 한 책상 그리고 실내 깊숙한 곳까지 찾아 들어 온 빛 때문이겠지요.

고요한 실내에 간혹 여인이 옷감을 뒤척이는 소리만 들리고 있습니다.

바케르의 미술교육은 상당 기간 계속됩니다.

유명한 화가들에게서 드로잉과 회화를 배운 후에 미술학교에 입학해서 4년간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스물 아홉의 나이에 독일의 뮌헨으로 건너간 그녀는 4년간의 공부를 끝냅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 번에는 파리로 건너가 레옹 보나와 르파주에게서 그림을 배웁니다.

정말 대단한 집념이었습니다.

 

 

 

 

동네 구두 수선공 Country Cobblers / 1887

두 남자가 창가에 놓인 테이블 앞에 앉아 구두를 고치고 있습니다. 바닥에는 수선을 해야 할 구두 한 짝이 보입니다.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은 기술자이고 그 옆에 앉은 소년은 견습생이 아닐까요?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구두를 수선하는 곳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도구도 있어야 하고 수리를 맡긴 구두들도 보여야 하는데 아주 말끔합니다.

마치 가정집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구두 고치는 법을 알려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수선하는 곳이라면 어떤 상태의 구두를 맡겨도 말끔하게 처리해 줄 것 같습니다.

정리 정돈된 상태를 보면 주인의 성격이 아주 꼼꼼할 것 같거든요.

파리에서 10년간 머무는 동안 바케르는 인상파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사실주의 계열로 분류되지만 때에 따라서는 자연주의와 초기 인상파로도 분류가 됩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어느 화파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주의 전통 안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하는데 제 생각에는 그녀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렸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화풍이라는 것도 결국은 또 하나의 제약일 수 있거든요.

 

램프 옆에서 By lamp light / 1890

밤이 깊었지만 램프를 켜 놓고 책상에 앉은 여인은 점점 더 책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여인의 등 뒤에 서 있는 그림자도 책을 힐끔거리며 넘어다 보고 있고 벽에 붙은 난로에는 탁탁 소리를 내며 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여인의 머리 위에는 멋진 모양의 커튼이 달려 있습니다.

이따금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실내,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도 들리는 듯 합니다.

학생 때 겨울이면 스탠드를 켜 놓고 이불 속에서 책을 읽던 생각이 납니다.

책이 펼쳐주는 환상의 세계 속에 들어 갔다 나올 때마다 조금씩 마음이 커졌었지요. 바케르 최고의 작품 속에서 그 시절이 떠 올랐습니다.

바케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색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사용할 것인가, 빛이 사물에 어떻게 떨어지는 가에 관한 것이었고

이런 것들은 그녀의 작품에 그대로 표현되었습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에도 노르웨이에서 여름을 보냈던 바케르는

피아니스트인 동생과 함께 유럽 전역으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런 중에도 그림 수업을 들었다고 하니까 배움에 대한 열정은 제가 이제까지 읽은 화가 중 최고입니다.

 

바느질 하는 여인 Kone som syr / 1890

19세기 그림 속 바느질 하는 여인은 정숙함의 상징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인상파 화가들에게는 그런 것을 떠나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겼고 그림의 소재였지요.

여러 가지 색이 조화를 이루면서 바느질 하는 장면이 아주 경쾌하게 다가 왔습니다.

푸른색과 붉은색 그리고 흰색이 적절하게 자리를 잡아 말끔한 느낌도 더해졌습니다.

바느질을 하는 그림을 볼 때마다 예전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이 떠 오릅니다. 저녁이면 바느질을 자주 하셨지요.

제 아내나 딸이 바느질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바느질을 하라고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잊어 버릴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서른 다섯의 늦은 나이에 데뷔를 한 바케르의 작품 제작 방법은 당대 외광파의 기준이 될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림에 담고자 하는 대상 앞에서 직접 선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어떤 빛이 적절한지에 대해 심사 숙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끝날 때까지 매일 같은 시간에 대상 앞에 서게 되었죠.

그녀의 작품 중에는 완성될 때까지 몇 년이나 걸린 것들이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바케르는 집중력도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연주하는 오빠 Storebror spiller / 1890

피아노를 연주하는 오빠 옆에서 동생은 턱을 괴었습니다. 귀는 오빠가 연주하는 소리에 젖었고 눈은 오빠에게 고정되었습니다.

엉거주춤한 오빠의 자세를 보니 상황이 짐작이 됩니다.

아마 동생이 피아노를 치고 있었겠지요. 자꾸 틀리는 부분이 나오자 오빠가 시범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봐도 피아노 의자가 오빠에게는 턱없이 작아 보이거든요.

세상 끝나는 날까지 지켜 주어야 할 대상 중 여동생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오빠들의 마음은 세상 어디에 가도 대개 비슷하지 않을까요?

피아노 위에 올려 놓은 촛대 두 개, 그림 속 두 사람처럼 참 예쁘군요.

파리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마흔 셋 되던 해 바케르는 노르웨이로 귀국합니다. 이미 노르웨이에서 그녀의 명성은 대단했습니다.

젊은 화가들에게는 영향력 있는 선배였습니다.

정교한 실내 풍경과 풍부한 색상 그리고 분위기 있는 빛이 그녀의 작품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1889년 그녀는 만국박람회에서 은메달을 수상하게 되는데 이후 그녀는 여러 종류의 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타눔 교회에서의 세례식 Baptism in Tanum church / oil on canvas / 1892

왜 아직 안 오는 거야? , 저기 오네!

고개를 돌린 여인의 얼굴에 초조함이 묻어 있습니다. 이제 막 아이를 안은 여인이 교회 입구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아마 유아세례를 받으러 오는 날인 것 같습니다.

아직 청정무구한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어 세례를 받는가 하는 분들도 있지만 아이에 대한 신의 은총을 기원하는 것이라고 보면,

부모들이, 어른들이 해 줄 수 있는 것으로는 최고의 것 중 하나가 되겠지요. 그림을 보다가 잠시 마음 끝을 살펴 보았습니다.

세례를 받았을 때의 마음이 떠 오릅니다. 앞으로는 꼭 제대로살겠다고 다짐했는데 이제는 희미해졌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끝도 많이 너덜너덜해졌습니다. 하느님께 수선을 부탁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마흔 넷이 되던 1889년부터 예순 일곱이던 1912년까지 바케르는 미술학교를 운영합니다.

이 학교는 노르웨이 미술 교육의 중요한 부분을 맡았고 젊은 화가들에게는 큰 영향을 준 곳이었습니다.

그녀의 작품들은 노르웨이 미술계의 중요한 작품들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화가로서 학교 운영자로서 활약하던 그녀는 여든 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북구는 물론 유럽에서도 선구적인 여성화가로 불릴 만큼 충분히 자격이 있었던 그녀였습니다.

 

유브달 스타브 교회의 실내 풍경 Interior from Uvdal Stave Church / 1909

노르웨이에 있는 유명한 유브달 스타브 교회의 실내 풍경입니다.

가운데 커다란 기둥이 있고 양쪽으로는 신자들을 위한 의자가 있습니다.

전면에는 제대가 있는데 제대를 둘러싸고 천장까지 이어진 벽면 장식이 아주 특이합니다.

붉은색으로 구획을 나눈 것이라던가 천장의 장식은 유럽의 다른 교회와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모습입니다.

더구나 의자 옆에 초록으로 채색되어 있는 장식은 붉은색과 어울려 강렬한 원시성도 느끼게 합니다. 예사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데 통로에 앉아 있는 여인이 보입니다. 양쪽으로 앉은 신자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자리가 없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조금 더 신의 말씀을 가까이 듣기 위함일까요? 어디에 앉는 것이 문제이겠습니까? 결국은 마음의 문제이죠.

빛은 제단에도 그녀에게도 아낌없는 은총을 내리고 있습니다.

성가대 활동을 하다 보니 성탄을 앞두고는 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연습 시간도 길어졌고 그 사이 사이 사람들과의 인연 때문에 기웃거려야 할 곳도 많습니다. 내일이 성탄 전야입니다.

모든 분들께 평화가 함께 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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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들이 마음에 들어 와서 앉는 순간 회색으로 변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겨울이니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가끔 화려했던 지난 계절들에 대한 기억과 새롭게 들어온 회색이 얽힐 때도 있습니다.

러시아 화가 블라디미르 오를로프스키 (Vladimir Orlovsky / 1842~1914)의 작품을 보고 있는데

머리 속에 있던 회색은 더 짙은 회색으로, 화려한 색은 더 화려한 색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속의 썰매 Troika in the Snow

서쪽 하늘로부터 먹구름이 다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해도 붉은 색 여운을 남기고 구름 속으로 점차 빨려 들어 갔습니다.

저녁이 되면 다시 눈이 시작되겠지요. 내린 눈이 다 녹지 않은 강 둑 위로 썰매가 미끄러지듯 흐르고 있습니다.

트로이카이니까 세 마리 말이 끄는 썰매가 되겠군요.

그냥 서 있어도 추운 겨울 오후, 가릴 것 없는 썰매 위에 앉은 사람들은 얼마나 추울까요?

썰매가 가는 길 앞에 길을 걷는 사람이 보입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썰매를 얻어 타야 할 것 같습니다.

살갗에 닿는 추위는 어떻게든 참을 수 있지만 마음에 닿는 추위는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 기억 납니다.

회색으로 가득 찬 풍경, 따뜻함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오를로프스키는 당시에는 러시아의 영토였지만 지금은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키에프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던 그를 선생님들은 늘 눈 여겨 보고 있었습니다.

키에프 제2중학교에 다닐 때는 선생님들이 상트페테스부르그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 추천서를 써 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입학한 아카데미에서도 그의 재능은 빛났습니다.

 

우크라이나의 A Spring Day in Ukraine / 1882

겨울이 끝나고 찾아 온 봄이 짙어 졌습니다. 눈길 닿는 곳 마다 연두와 초록 세상이 열렸습니다.

여린 풀들이 마치 양탄자처럼 깔린 마당에 겨우내 갇혀 있었을 가축들이 모두 나와 봄을 즐기고 있습니다.

장대를 들고 물을 길러 가는 소녀의 뒤, 어머니는 벽에 등을 기대고 바느질을 시작했습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골의 봄입니다.

마치 거대한 조명을 켜 놓은 듯 그림 속에 빛이 가득합니다. 옅은 안개가 낀 듯한 대기의 묘사는 또 어떤가요?

이런 작품을 만날 때마다 눈이 커집니다.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오를로프스키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타라스 셰프첸코를 만나고 그의 영향을 받습니다.

셰프첸코는 원래 농노 출신이었지만 타고 재능으로 결국은 자유 신분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자신이 태어난 우크라이나에 대한 사랑을 배운 것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재학 중일 때 은메달을 수상한 오를로프스키는 1868, 스물 여섯의 나이에 학교를 졸업하면서 금메달을 수상합니다.

 

 

드네프르 Dnieper

우크라이나를 지나는 드네프르강 옆으로 초원이 펼쳐졌습니다.

초원 위로 난 작은 길, 길 옆으로 흐드러지게 핀 들꽃들은 누구의 돌봄도 없었지만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쇠스랑을 어깨에 맨 소녀가 등장했습니다. 햇빛의 기울기를 보니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 가는 길인 것 같습니다.

그녀의 부드러운 노래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그녀 역시 들꽃처럼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강이 흘러가는 곳은 아득하고 그 위를 떠 가는 배 몇 척, 점으로 멀어지고 있습니다.

아카데미 학생일 때 동료들과 대중들로부터 이미 인정을 받았던 오를로프스키는 금메달과 함께 해외 여행의 장학금도 받게 됩니다.

1869년부터 1872년까지 그는 프랑스와 스위스,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공부도 함께 합니다.

바다의 화가라고 불렸던 아이바조프스키 (http://blog.naver.com/dkseon00/140053373113),

숲의 화가라고 불렸던 쉬스킨 (http://blog.naver.com/dkseon00/140055725990)도 이런 혜택을 받은 화가였지요.

러시아 화가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부문이 가장 부럽습니다.

능력 있는 젊은이를 선발해서 국가가 기르는 것, 꼭 해야 할 일거든요.

 

 

우크라이나 풍경 Ukrainian Landscape

드네프르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한 남자가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앉았습니다.

강 건너 마을은 햇빛 속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고 강은 저 멀리서 크게 몸을 뒤틀며 지평선을 향해 사라지고 있는데,

장쾌하게 펼쳐진 풍경 속에 앉아 있는 사내도 점차 그 속으로 녹아 들고 있습니다.

거대한 바람개비를 달고 있는 건물은 아마 방앗간 같은 건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간혹 이런 풍경 속에 빠져들고 싶습니다.

시선은 거리낄 것 없어 무한대로 뻗어가고 바람 소리, 풀잎들이 서걱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곳,

그 곳에 있으면 온 몸의 세포들이 일제히 깨어날 것 같거든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스부르그의 상류층이 오를로프스키의 주요 고객들이었지만 곧 그의 작품은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얻습니다.

그는 풍경화에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정열을 쏟아 부었습니다.

작품 제작은 아주 신중하고 꼼꼼하게 진행되었고 장식성이 포함되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주 자연스러웠습니다.

동시에 두 가지를 만족시키기 어려운 것을 하나로 묶는 그의 재능은 타고 난 것이 아니었을까요?

 

 

  베는 사람들 Mowers

강 옆으로 꽃밭이 열렸습니다. 오늘은 그 꽃을 베는 날인 모양입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큰 낫을 든 사람들이 꽃을 베어 나란히 밭에 깔아 놓았습니다.

나중에 버리기 좋게 하기 위해서 펼쳐 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날을 손질 하는 사람 옆에 선 여인이 이 밭의 주인인 것 같습니다.

풀을 다 베고 이 곳에 다른 것을 심을 계획인 모양인데 손을 뺨에 대고 있는 모습이 마음이 편치 않은 것 같습니다.

강 옆의 꽃밭도 좋을 것 같은데 그냥 두시지요.

혹시 이런 말을 들었던 것은 아닐까요?

1874, 서른 두 살이 되던 해 오를로프스키는 아카데미 회원이 됩니다.

영국의 로열 아카데미와는 역사가 다르다고 해도 젊은 나이였습니다. 그만큼 그의 재능과 대중들의 반응이 좋았다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2년 뒤, 자신이 졸업한 상트페테스브르그 아카데미의 풍경화 담당 교수가 됩니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 때는 꼭 선생님을 해보고 싶습니다.

 

저녁 Evening

해가 산 너머로 지고 나자 산 그림자가 내려 왔습니다.

하늘에 걸린 구름은 붉은 색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마을 옆을 흐르는 강은 흰 띠로 남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밭에서, 산에서 그리고 저 멀리 강가에서도 집으로 돌아 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집은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친 몸이지만 집으로 돌아 가는 길은 지루하지 않습니다.

예전 완도에서 업무 때문에 6개월을 혼자 산 적이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정말 먼 길이었습니다.

1870년부터 10년간 오를로프스키는 아카데미에서 주관하는 전시회에 빠지지 않고 출품을 합니다.

그는 작품 속에 가을이 오는 신호와 낮에서 밤으로 변하는 순간 같은 것을 기가 막히게 담아 냈습니다.

가을 공기의 신선함이나 저녁의 빛 속으로 스며드는 하루의 마지막 모습 같은 것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들이었지요.

그는 앞서 말한 아이바조프스키만큼 인기있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모래톱 Shoal

제목을 모래톱이러고 붙였지만 우리가 가끔 만나는 모세의 기적같은 길입니다.

깊이가 얕은 바다, 밀물 때 바다가 물러나면서 길이 열리는 곳입니다.

물 속에 숨어 있던 길을 기꺼이 바다가 비켜주는 모습은 과학에 대한 상식이 이유를 설명하지만 여전히 신비롭습니다.

물결의 흔들림과 그 위에서 빛나고 있는 햇빛 그리고 점점 깊어가는 바다의 모습이 이렇게 표현될 수도 있었군요.

도대체 오를로프스키의 표현 능력은 어디까지였을까요?

오를로프스키의 작품에는 빛이 가득한데 낮은 톤으로 표현된 양지와 음지를 조합시켜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또 높은 하늘과 힘있게 솟아 있는 나무를 배치해서 구성에도 깊이를 만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색의 조화를 통해 장식적인 느낌도 더했습니다.

작품의 크기와 사실적인 풍경 모사는 독특한 그만의 스타일로 자리를 잡았고 오를르프스키는 풍경화의 대가로 우뚝 서게 됩니다.

 

추수 Harvesting / 62cm x 100cm / oil on canvas / 1882

누렇게 익은 벌판, 두 여인의 추수하는 손길이 바쁩니다.

아직 거두어야 할 것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데 지평선부터 피어 오르던 구름은 벌써 하늘을 거의 다 덮다시피 했습니다.

짙은 푸른색 구름과 노란 밭이 대비되면서 긴장감이 더 해졌습니다.

이제 그만 하고 돌아 가야 할 것 같은데 그만 하죠?

조금만 더 하고 ---

밭 길을 따라 서둘러 돌아 오는 여인의 모습도 보입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서둘러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걱정입니다.

이 작품은 오를로프스키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회원이 될 수 있게 한 그의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쿠인지 (http://blog.naver.com/dkseon00/140053456108)의 영향을 받은 오를로프스키에 대해 사실적인 러시아 풍경화 분야에서

새로운 지평을 연 화가라는 평가가 주어졌습니다. 아울러 명성이 올라가는 동안 그에게 작품 주문은 계속 되었고 그의 작품을 구매한

사람 중에는 알렉산더 3세도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그의 작품에는 러시아와 그가 태어난 우크라이나의 풍경에 대한 사랑과 찬양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크리마아 수도크 해변 Seashore in Sudak (Crimea) / 1889

흑해 연안의 휴양지로 유명한 수도크 해변에 파도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은 점차 어두워지고 있고 구름이 몰려들면서 바람이 조금씩 거세지기 시작했습니다.

배를 해변 위로 끌어 올리기 위해 남자들이 힘을 쓰고 있습니다. 물결이 더 거세기 전에 빨리 올려야 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맨 왼쪽 남자가 온 힘을 다하는 모습에 저도 가서 도와주고 싶습니다.

문득 올 해 나에게 닥친 파도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그 파도에서 내가 타고 있었던 배는 제대로 지킨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몇 척은 잃어 버린 것 같습니다.

1897, 쉰 다섯이었던 오를르프스키는 장티푸스에 걸립니다.

그리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그가 늘 사랑하고 있던 그의 고향, 키에프로 돌아갑니다.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일흔 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니까 아마 고향에서도 많은 작품을 그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크라이나 풍경 Landscape in Ukraine / 1883

흙먼지 날리는 밭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씨를 뿌리기 위한 작업이겠지요. 계절은 늦은 봄이 아닐까요?

끝이 안 보이는 광활한 대지 위, 생명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겨우내 얼었던 땅에 숨을 불어 넣어 주는 바쁜 손길들이 느껴집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저는 가끔 천리길을 부릅니다. 장발머리였을 때 배운 그 노래 중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간다라는 구절이 제일 좋습니다.

오를로프스키도 그 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우크라이나 –--- 꼭 가보고 싶습니다.

발끝에서부터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펼쳐지는 풍경을 한 작품 안에 담은 오를로프스키가 지금 태어났으면

화가보다는 사진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특히 파노라마 기법이 담긴 풍경 사진에서는 대가가 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차가운 겨울, 지난 계절에 대한 기억들이 가득 떠 오르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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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3 10:33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림류.jpg 작품2014.12.2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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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쿠쉬 (Vladimir Kush)
출생 : 1965년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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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 화가들의 행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끝내고 미국에서 활동한 화가들이 있는가 하면 파리에서 공부를 한 후 그 곳에서 정착하거나

다시 미국으로 돌아 오는 경우입니다. 세 번째는 독일의 뮌헨으로 갔다가 파리를 거쳐 미국으로 돌아 오는 길을 택한 화가들도 있는데

월터 맥이웬 (Walter MacEwen /1858~1943)은 세 번째에 가까운 길을 걸었던 풍속화가이자 초상화가였습니다.

 

 

 

 

 

귀신 이야기 The Ghost Story / 1887

실을 잣기 위해 여인들이 모였습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수다가 시작되었는데 그만 귀신 이야기를 흐르고 말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가운데 앉아 이야기를 하는 여인에게 집중 되었습니다.

여인의 낮은 목소리를 모두들 숨을 죽이고 듣고 있는데, 꼴깍하고 침이 넘어 가는 소리도 들릴 것 같습니다.

귀신 이야기가 너무 생생해서 듣고 있는 여인들도 긴장한 모습입니다.

창 밖은 햇빛이 가득하고 살내도 환하지만 인형을 든 어린 소녀에게 펼쳐진 상상의 귀신 이야기는 충분히 무서운 것 같습니다.

표정이 굳어 있거든요.

그런데 예전에는 귀신들이 무서웠지만 지금은 사람이 더 무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닌가요?

맥이웬은 시카고에서 태어났습니다.

열 여덟이 되던 해 노스트웨스트 대학에 입학해서 회계를 배우며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일을 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업을 잇게 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사무실에 한 가난한 사람이 들르게 됩니다.

그리고 맥이윈의 인생 항로를 바꾸게 하는 사건이 일어 납니다.

 

 

 

편지 The Letter / 29.2cm x 24.1cm / oil on canvas / c.1885

볕이 드는 창가에 놓인 테이블에 몸을 기대고 편지를 펼쳤습니다.

기다리던 편지였지만 내용은 그녀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을까요? 편지를 읽어 가는 여인의 눈이 신중합니다.

예전에 한참 편지를 쓰고 받았을 때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편지를 보낸 사람의 얼굴이 읽는 내내 함께 했던 기억이 납니다.

손으로 쓴 편지의 힘이었지요.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들의 모습은 많은 화가들의 작품 소재였는데, 기다리는 간절함이 더하기 때문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생각해보니까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남자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그나저나 편지에 쓰인 내용이 궁금합니다. 나쁜 것만 아니면 좋겠습니다.

가난한 방문객은 10달러를 대출받고자 했습니다. 담보물은 그가 들고 온 그림 그리는 도구 일체였습니다.

계약서를 쓰고 대출을 받은 그 남자는, 그러나 그 후 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맥이웬은 찾아 가지 않은 화구 박스를 열고 그 안에 있는 것들을 가지고 몇 가지 그림을 그려 보았습니다.

의외로 그림에 흥미를 느낀 맥이웬은 화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화가가 되기로 한 계기가 마치 소설 같지만 제 생각에 타고 난 재주가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공증인 The Notary

이 곳에 서명을 하시면 됩니다. 그러고 나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공증인이 가리키는 곳에 여인이 펜을 들고 서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순간 여인의 표정에 망설임이 떠 올랐습니다.

공증은 약속의 증거입니다. 확실하다는 것을 법적으로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적인 일에는 꼭 필요한 것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비정함도 잊어서는 안 될 일이지요.

어떤 것에 대한 공증인지 알 수 없지만 서류가 아니어도 약속이 지켜질 수 있는 세상은 이미 기대하기 어렵게 된 지금,

어쩌면 여인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일 수 도 있습니다.

1877, 열 아홉이 된 맥이웬은 대학을 그만두고 화가가 되기 위해 독일 뮌헨으로 건너갑니다.

아마 아버지의 실망은 대단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뮌헨 아카데미에 입학 한 맥이웬은 그 후 60년간 유럽에서 머물게 되는데

그 때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겠지요.

뮌헨 아카데미는 17세기 독일 화단의 작품들을 가르쳤는데 뮌헨의 주변 풍경과 연계해서 구체적인 주제를 선정하는 교육을 했고

초상화와 풍경화에 강점이 있었습니다.

 

 

책을 들고 있는 소녀 Girl Standing With Book

모자를 팔목에 걸고 소녀가 책을 펴 들었습니다.

, 이제 움직이지 말고 앞을 보세요.

마치 이런 소리가 함께 들리는 듯 합니다. 사진관에서 모델을 세워 놓고 사진을 찍듯 그림에 그런 느낌을 담았습니다.

사진기가 발명되고 난 후, 그림은 간혹 사진과 비슷한 구성을 가져오곤 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그런 느낌이 납니다.

책에 반사된 햇빛이 소녀의 얼굴에 닿아 얼굴에 옅은 그림자가 생겼지만 소녀의 귀여움은 감출 수가 없군요.

그러나 맥이웬의 뮌헨 아카데미 수업이 편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듣고 싶은 과목이나 교수를 선택할 권리가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교육 과정은 엄격했고 결국 맥이웬은 아카데미를 떠납니다. 열혈 청년이었습니다.

그 후 그가 누구에게서 그림을 배웠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1880년에 뮌헨 아카데미에서 은메달을 수상했다는 것을 보면 아카데미와 완전히 인연을 끝낸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 A Story for Children / 50.8cm x 73.7cm / oil on canvas / c.1890

그래서 산을 넘어 가는데 갑자기 시커먼 괴물이 나타났어요!

선생님의 이야기에 아이들의 표정이 심각해졌습니다. 저 정도 나이면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집중하기 어려운데

모든 아이들이 석상처럼 굳은 자세로 선생님 이야기에 빠져 든 것을 보면 선생님의 이야기 솜씨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지금 아이들 머리 속에는 온갖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겠지요. 상상력은 사람을 키우는 양식 중 하나입니다.

높은 의자에 앉아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때가 가장 풍부할 때이고 발이 땅에 닿는 순간 급격하게 줄어듭니다.

어렸을 때 높은 곳에 앉아 발을 흔들거리고 있으면 몸에 날개가 돋는 것 같았던 느낌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감히 꿈도 못 꾸는 그런 느낌이 있었지요.

뮌헨에서 잘 지내던 맥이웬은 파리로 거처를 옮겨 아카데미 줄리앙에 입학합니다.

이 곳 역시 많은 미국 출신 화가들이 공부하던 곳이었지요. 맥이웬은 파리 살롱전에 작품을 출품했는데 대단한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 동안 쌓인 내공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 준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맥이웬은 헤이그파의 작품에 집중하게 됩니다.

 

기다림 The Waiting

슬며시 커튼을 열었습니다. 아직 도착하기로 한 시간은 남았지만 도저히 그 때까지 견딜 수 가 없습니다.

방금 보고 돌아 섰지만 다시 커튼을 열 수 밖에 없습니다.

커튼을 모두 열어 놓고 창 밖을 보고 싶지만 혹시라도 기다리는 모습을 들키면 부끄러울 것 같아 이렇게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은 사람을 때에 따라 절망케 하지만 확실한 기다림은 견딜 만 합니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을 휘젓고 있는 동안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길거리에서, 다방에서, 책방에서

사람을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기억할 겁니다.

그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모든 생각들이 순간에 사라졌던 것 말입니다.

당시 네덜란드 헤이그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화가들은 그 곳 주변의 풍경과 어촌 사람들의 일상을 주제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 대가들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맥이웬도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신을 대표하는 화풍으로 발전시키게 됩니다.

파리에 살던 그는 네덜란드 중세풍의 도시인 하템에 화실을 열고 여름이면 이 곳에서 지내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위령의 날의 빈자리 The Absent One on All Souls' Day / oil on canvas /1889

위령의 날은 세상을 떠난 모든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기억하는 날입니다.

앞자리에 앉은 여인이 보고 있는 책은 아마 성경인 것 같습니다. 그녀 뒤에 노인이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노인 옆에 희미하게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이 등장했습니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함께 펼쳐졌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미 세상을 떠난 영혼을 생각하는 순간 그 분들이 그림 속 할머니처럼 우리 옆에 오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파리에 정착해서 화가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던 맥이웬은 1910년 이후 작품수가 감소합니다.

또 네덜란드의 풍경을 주로 그리던 것에서 당시의 파리 풍경이 자주 등장하게 됩니다.

예순이 넘자 맥이웬은 화가라는 직업에서 은퇴를 합니다. 예술가들에게 은퇴라는 것이 있는가 싶지만 기록은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마 더 이상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마음으로부터 자유스러워졌다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제국의 여인 A Woman of the Empire / 188cm x 40cm / oil on canvas / c.1902

제목만 놓고 본다면 이 여인은 왕녀쯤 되겠지요. 주변 배경을 보니 일반 가정집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거울을 통해 보이는 여인의 표정이 차분합니다. 활기가 넘친다기 보다는 절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왕궁의 생활이 주는 엄격함과 따분함 같은 것이 섞여 있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맥이웬의 다재 다능한 재능이 유감없이 표현된 작품 속 여인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가끔은 나를 둘러 싸고 있는 것에서 과감하게 떠나 보세요. 조금 버거울 수도 있지만 활력을 찾는 데는 그 것 이상 좋은 것이 없거든요.

맥이웬에게 60년 가까이 살던 파리에서 떠나야 할 일이 일어 났습니다. 2차 대전이 일어나고 파리도 안전한 곳이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1940, 맥이웬은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 뉴욕에 정착합니다. 63년만의 귀국이었습니다.

유럽의 미술 시스템 안에서 성공을 꿈꾸었던 세련된 미국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맥이웬은 1943, 여든 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유럽, 특히 네덜란드를 좋아했던 그의 마지막 안식처는 미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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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말



예전에 음악가들의 아내라는 제목으로 음악의 뒷골목에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대개 괴팍스러운 아내들의 이야기였지만 예술가 옆에는 특이한 여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모딜리아니의 아내 쟌느 에퓨테른느가 가장 기억에 남지만 사랑하는 여자로 인해 인생이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임스 티소 (James Tissot / 1836~1902)도 그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이 근무하는 미국인 동료에게 제임스 티소의 이름을 보여주고 발음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미국 이름이

아니고 프랑스 사람 같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그냥 알 수 있다고 하면서 티소 (Tissot)

맞는다고 합니다. 예리한 친구 같으니라고 ----. 맞습니다. 그는 프랑스 화가입니다.

 

 

 

 

(10October / 1877)

 

 

제목을 보지 않아도 10월입니다. 치마를 살짝 걷고 숲으로 들어가는 여인 뒤로, 햇빛으로 가득한 노란

단풍잎들이 모두 조명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여인의 얼굴 선이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옆구리에 책을

끼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나무 밑에 앉아 편하게 책이라도 볼 요량인 것 같습니다만 엉거주춤한 자세로

봐서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긴, 가을 속에 있는 여인의 마음을 무슨 재간으로 읽을 수 있겠습니까 ----.

 

 

 

 

(점심Un Dejeuner / 1868)

 

 

항구 근처의 야외 식당입니다. 한 상 잘 차려 낸 식사를 끝내고 커피를 마시는 중입니다.

남자는 이야기 보다는 여인의 자태에 빠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왠지 자세가 바뀐 것 같아서

낯 선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습니다. 대개 남자가 몸을 뒤로 젖히고 여인이 턱을 괴고 있는 장면이

일반적인 것 같은데 이 두 사람은 그 반대입니다. 더구나 여인의 옷차림은 가벼운데 남자의 옷차림은

중무장에 가깝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인의 무릎 위에 앉은 강아지와 눈이 맞았습니다.

강아지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 별 생각을 다하네 ----- ’ .

제임스 티소의 프랑스 이름이 있지만 제가 읽을 자신이 없습니다. 티소는 프랑스 낭트에서 중류층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에 대한 유년 기록은 거의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정보로는 파리로 가서 미술학교에 입학한 것이 처음 나타나는 기록인데, 파리에서는

드가, 마네와 함께 한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쟁쟁한 친구들이군요.

 

 

 

 

 

(교회에서In Church / 1869)

 

고해소 앞이 아닌가 싶습니다. 뒤 쪽으로는 고해소로 들어가는 여인이 보이고 노인은 장궤를 하고

있습니다. 남루한 옷차림과 피곤한 얼굴의 노인의 기도는 간절한데 대조적으로 젊은 여인은 무표정한

얼굴입니다. 의자를 밀어 젖힌 여인의 손과 노인의 손이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습니다. 너무 당당한,

그러나 너무 차가운 여인은 얼굴을 돌리고 있습니다. 보고 싶지 않겠지요. 몇 십 년 뒤 옆에 있는

노인이 된다는 것을 그녀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외면하면 모든 것들이 그냥 지나치던가요 ------ .

아내가 한 마디 했습니다. ‘ 그 여자 상복 입었네. 옆의 노인은 시어머니고 ----‘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드가가 티소의 초상화를 그릴 정도로 드가와는 꽤 친한 사이였는데 나중에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둘이 크게 싸웠고, 티소는 인상파 전시회 참가도 거부합니다. 애들처럼 -----.

 

 

 

 

 

(작별The Farewell / 1871)

 

 

세상에 슬프지 않은 이별은 없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이별은 다시 돌아 올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지만, 같은 하늘 아래에서 만나지 못하는 이별은 시간이 흐를수록 목을 마르게 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 있는 쇠로 된 벽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서로의 표정은 비장합니다. 왜 티소의

그림 속 남자들은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여인의 치마에 달린 가위를

써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가위가 분명한데, 저 용도는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가 없습니다.

1871년 보불 전쟁이 끝나고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파리코뮌 정권이 들어 섰지만 바로 정부군의

역습으로 정권이 무너지고 3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합니다. 파리코뮈의 지원자로

의심을 받은 티소는 체포를 피해 영국 런던행 배에 몸을 싣습니다. 파리와의 작별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An Interesting Story / 1872)

 

 

붉은 옷의 사내는 지도를 펴 놓고 신이 났지만 이야기를 듣고 있는 두 여인은 죽을 맛입니다. 한 여인은

아예 다른 곳을 보고 있고 또 한 여인은 하품을 억지로 참느라 손가락으로 입을 막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면 군대 이야기쯤 되는 것 같습니다. 3년 군생활 하고 30년을 이야기 한다는,

그 무궁무진한 이야기 창고 말입니다. 세상 모든 여인들은 같은 생각인 모양입니다.

학교를 졸업한 티소가 처음 손 댄 분야는 역사적인 장면의 묘사였는데 곧 바로 파리의 여인들의

모습으로 주제를 옮겼고, 그의 작품은 미술품 수집가들로부터 인기가 높아서 돈도 꽤 모았습니다.

그러나 파리코뮌 사건이 발발하자 그는 영국으로 도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국에 도착해서는 이름을 영국식으로 제임스라고 바꾸고 영국 사람들 기호에 맞는 초상화를 그려

곧 바로 인기를 얻습니다.

런던에서 그는 그의 인생을 바꾸게 만드는 한 여인을 만납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캐틀린 뉴튼Katheleen Newton In an Armchair)

 

티소가 이혼녀인 캐틀린 뉴튼을 언제 어디서 만났는지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그녀에 관한 것도 그녀의

집안에서 감추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공개한 것입니다. 잠깐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아일랜드 출신의 군장교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17살이 되던 해 인도에 있는 군의관과 결혼을

시킵니다. 결혼을 위해 영국에서 인도까지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이 철없는 아가씨가 그만 선장하고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낯 선 배 안에서 몇 달을 같이 있다 보면, 더구나

선장쯤 되는 남자라면 사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17살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

 

 

 

 

 

 

(내 사랑Mavourneen / 1877)

 

 

티소의 유일한 여인이었던 캐틀린입니다. 티소의 그림 속의 가장 많은 모델이었고 신비스러운 매력을

가졌다는 여인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한참 그녀를 드려다 보고 있으면 허전함이 느껴집니다.

인도에 도착한 캐틀린은 뉴튼과 결혼식을 올리지만 결혼식 직후 선장과의 관계에 대해서 남편에게

고백을 했습니다. 남편에게 돌아온 답은 즉시 이혼이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영국으로 가는 배에 올라야

했고 영국에 도착한 후 선장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 고백 안 할 수가 없었겠네요.

 

 

 

 

 

(파라솔을 든 뉴튼 부인 Mrs. Newton with a Parasol / 1879)

 

 

일본풍의 우산을 든 캐틀린 모습을 번잡한 배경 없이 처리했습니다. 덕분에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이

깔끔하게 드러났지만 2% 비어 있는 듯한 표정은 여기서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캐틀린은 티소의 아이를 낳은 후 그녀가 낳은 선장의 아이와 함께 아예 티소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때가

티소가 영국으로 넘어 온지 5년이 되던 1876년이었습니다. 그녀와 함께 살았던 시간이 티소의 일생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친구들을 초대하는 경우도 거의 없이 오직 둘 만 살았습니다.

정말 사랑했었나 봅니다. 그러나 1882년 캐틀린이 28살 그리고 티소가 46살이 되던 해, 그녀는 폐결핵

말기를 비관, 자살하고 맙니다. 티소의 행복한 생활은 거기까지였습니다.

 

 

 

 

 

(너무 일찍 왔네Too early/ 1873)

 

 

작은 실내 음악회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한껏 멋을 낸 사람들이 옹기 종기 모여 있는데 너무 일찍

도착했습니다. 맨 오른쪽 남자는 기다리기 지루했던지 허리를 벽에 기대고 있습니다. 곧 도착할 사람이

오늘 모임의 주인공인가 보죠? 모두들 출입문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특히 안 쪽의 방에서 고개를 살짝

내민 두 여인의 모습이 작품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티소가 영국 상류 사회를 묘사한 그림 중 처음으로 크게 그린 것이었습니다. 미술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평가도 받은 작품이었는데 이와 같은 대작을 연작으로 발표합니다.

 

 

 

 

 

(!Hush / 1875)

 

 

이제 막 연주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도대체 분위기가 잡히지 않습니다. 화면 가운데 연주자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고요함이 있는데 왼쪽은 소란스럽습니다. 이국적인 복장을 한 사람도 눈에 띄는 것을 보면

그래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의 모임인 것 같은데, 왼쪽의 여인은 연주자의 자세와 관계없이

아예 몸을 돌리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연주자의 얼굴입니다.

벌떡 일어나서 ---‘ 하고 싶습니다.

티소의 작품은 많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나 러쉬킨 같은 당대의 평론가들로

부터는 모진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상스러운 부자들의 총천연색 사진을 보는 것 같았다는

비평 이었는데, 비평가들이야 뭐라고 하던 그의 그림은 계속 잘 팔려 나갔습니다. 이 것이 또한 파리에

있던 인상파 동료들의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거기나 여기나 사촌 때문에 배 아프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선상 무도회The Ball on Shipboard / 1874)

 

 

아래층에서는 한참 무도회가 열리고 있는데 바다 바람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갑판으로 나왔습니다.

어떠신가요? 뜨거운 열기라도 확확 뿜어져 나와야 할 갑판에는 이상한 분위기가 떠 있습니다. 어수선

하지만 따분하고 여인들의 모습도 생기가 있다기 보다는 정물 같은 느낌입니다. 관객을 향해 멍한

눈으로 보는 여인은 무도회가 그리 탐탁한 것 같지 않습니다. 티소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겉은 화려하나

새 장 속에 갇힌 빅토리아 시대의 여인들의 모습이었다는 평론가들의 말이 이해됩니다.

사실 갑판 위에 매력 있는 남자도 없지만 말입니다.

 

 

 

 

 

(템즈 강The Thames / 1876)

 

 

템즈강을 따라 가는 보트 여행입니다. 강 옆에 정박 중인 배에서는 거대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하늘은 온통 스모그로 덮여 있습니다. 강물도 회색입니다. 짐을 올리고 내리는 인부들의 고함소리도

배가 강물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고 있습니다. 고개를 돌리고 있는 무표정한 여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가운데 앉아 있는 조그만 강아지가 저에게 또 한마디 했습니다.

신경 끄셔. 마음도 심란한데 ----‘

템즈강은 그가 영국에서 사는 동안 즐겨 찾았던 그의 주제였습니다.

캐틀린이 세상을 떠나고 나자 티소는 런던에 있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캐틀린이 죽고

5일 후 티소는 모든 것을 그대로 놔두고 파리로 떠나는데, 집은 나중에 화가 알라 타테마가 구입합니다.

옆에 있던 아내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한 마디 했습니다.

애들은 어떻게 했어?’

아이들에 대한 기록은 없었습니다.

 

 

 

 

 

(마음의 평화Quiet / 1881)

 

 

아이가 모델을 하다가 지쳤습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심통도 부려보지만 그 옆에 엄마는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아내 캐틀린과 아마 그의 딸이겠지요. 그림들을 보다 보면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마음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 그림은 정말 따뜻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캐틀린에 대한 티소의 사랑의

정도를 시간과 공간을 건너 뛰어 제가 알 아 챌 수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티소는 죽을 때까지 어떤

여자와도 로맨틱한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다고 했는데 잘 참으셨습니다. 티소 선생님 ---.

 

 

 

 

 

(책 읽어 줄게Reading a Story / 1879)

 

 

책을 읽어 주는 엄마보다 고개를 들고 이야기에 빠져 든 아이에게 눈길이 갑니다. 책 장을 넘기는

엄마는 손가락으로 애정과 여유로움을 함께 넘기고 있습니다. 바라보는 저도 기분이 좋은데 소는

얼마나 좋았을까 싶습니다.

 

 

 

 

 

(야심많은 여인A Woman of Ambition / 1885)

 

 

한 눈에 도 범상치 않은 여인이 남자의 남편의 팔을 끼고 입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오른쪽 남자는 누군가에게 귓속말을 하는 중입니다. 좋은 이야기는 아닌 듯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 뒤에서 하는 이야기가 좋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왼쪽 남자는 노골적으로 경멸의

눈빛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에게 팔을 내어 준 남자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상상할

수는 있습니다. 늙었지만 돈은 많고 직위도 높은 사람일 것이고, 이 여인은 물 불 안 가리고 저 남자의

팔을 낄 수 있는 자리를 잡았겠지요.

그러나 여인은 주위의 수군거림에 전혀 신경 안 쓰는 표정입니다. 역시 ----- .

파리로 돌아온 소는 3년 정도 파리의 생활을 화폭에 옮깁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 갔다가

갑자기 이상한 체험을 하고 난 후 종교화에 헌신하기로 결심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남긴 구약과 신약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수채화가 700점에 달합니다.

무슨 체험이었을까요?

 

 

 

 

 

(우리 구세주가 십자가에서 내려다 본 것은What our Savior saw from the Cross)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 내려다 본 풍경입니다.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예수님 발 아래로 성모 마리아와 막달레나 마리아가 있습니다. 신포도주를 적셔 주었던 장대도

보입니다. 소리를 지르고 있는 유대의 제사장들도 있고 걱정스러운 듯이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충격은 고흐 박물관에 걸려 있던 장 레옹 제롬의 골고타를 본 이후 처음입니다.

루벤스의 십자가 책형이 극적인 장면을 묘사해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화가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화면에 묘사했기 때문에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안쓰럽고 안타깝고

무서운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죄인의 마음이 됩니다.

이 작품에서 몇몇 여인을 제외하면 모두가 방관자의 자세로 올려다 보고 있습니다. 육신의 고통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이 일과 자신은 관계가 없다는, 이 일은 당연한 결과였다는 듯이 올려다 보는

사람들의 눈 빛에서 인간 예수는 더욱 큰 고통을 받았겠지요.

나는 어떤 눈 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걸까요? 시점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그림뿐일까요----.

 

 

(정원 벤치The Garden Bench / 1882)

 

 

티소는 프랑스 화가이지만 프랑스로부터는 너무 영국적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의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의 작품들은 고가로 팔렸습니다.

또한 그가 그린 종교화는 그 때까지의 상투적인 표현에서 벗어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대한 비평은 아직도 냉소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최근 그에 대한 흥미가 높아지면서 그에 관한 책과

전시회가 활발하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비평가와 대중은 무엇이 다른 걸까요? 그림이 갖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늘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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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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