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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스포츠

김연아, 여자피겨 2A 기술 레전드 계보의 완결판

 

 

 

 

 

"Such a technique has passed down all the way to Yuna Kim.

 

Especially if you look at Yuna Kim's double axel, it's remarkably Fleming's.

 

The legend's genealogy in technicality's side starts with Tenley Albright,

 

through Carol Heiss, Peggy Fleming, Janet Lynn, and Dorothy Hamill,

 

and ends all the way with Yuna Kim."

 

 

"이러한(더블 악셀) 테크닉이 김연아에게까지 완전히 전수되었다.

 

특히 김연아의 더블 악셀을 보면 (알겠지만), 신기하리만치 플레밍의 더블 악셀을 연상시킨다.

 

기술의 측면에서 레전드의 계보는 텐리 올브라이트로 시작해

 

캐롤 하이스,페기 플레밍, 자넷 린, 도로시 해밀을 거쳐

 

김연아에게서 완전히 끝을 맺는다."

 

 

 

- Jesse Helms

 

 

 

중국 CCTV의 김연아 소치 쇼트 프로그램 해설 캡처

 

 

 

Tenley Albright, the legendary flagbearer of American Golden Age

 

텐리 올브라이트, 미국의 황금기의 전설적인 기수

 

 

 

출처: jessehelms.hubpages.com Click

 

 

 

 

 

텐리 올브라이트: 프리 스케이팅의 선구자

 

 

 

역대 가장 위대한 챔피언들 중 1명인 캐롤 하이스에게는 그녀의 커리어 동안 그녀가 뛰어넘을 수 없었던 태산 같은 인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전설적인 텐리 올브라이트였다.

 

 

올브라이트의 그늘이 항상 하이스에게 드리워져 있었다.

 

올브라이트에게 지휘권을 내준 2인자로 오랫동안 기다려온 하이스는 올브라이트가 막 은퇴하려던 시점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녀의 오랜 롤모델로부터 지위를 이양받았다.

 

 

올브라이트는 팍스아메리카의 황금시대를 연 첫번째 미국 챔피언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올브라이트가 여자 피겨 스케이팅에서 프리 스케이팅의 확립에 기여한 기술적인 능력을 가진 스케이터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프리 스케이팅이라는 포맷이 최초로 조직화된 (경기) 프로그램이 된 때가 바로 텐리 올브라이트의 시대였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바로 올브라이트의 기술적인 능숙함[실력]이었다.

 

만약 여러분이 올브라이트의 온아이스 동작들을 보고 현재의 스케이터들과 비교해본다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즉각 알아챌 것이다.

 

 

 

[영상]1951 World Chapionships with Jacqueline du Bief

 

(재클린 뒤 비에프와 함께한 1951년 세계선수권대회)

 

 

 

 

 

 

 

 

여기 또 1명의 뛰어난 스케이터가 있다, 1951년 월드에서의 재클린 뒤 비에프.

 

재클린은 1952년 월드 챔피언이자 1952년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며, 1947년부터 1952년까지 프랑스 내셔널 챔피언이다.

 

1951년 월드에서의 프리 스케이팅과 올브라이트의 연기 & 동작들 사이의 차이를 여러분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올브라이트 이전에, 프리 스케이팅은 전후관계의 맥락이 있는 조직화된 통합 없이 여러 개의 수행요소들을 결합해 연이어 시연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단순한 나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텐리 올브라이트의 프리 스케이팅은 조직화된 연기였으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종류의 프리 스케이팅이었다.

 

 

 

[영상]텐리 올브라이트 - 1954년 미국 내셔널

 

 

 

 

 

 

 

 

올브라이트가 집권하던 시절에, 피겨 스케이팅은 고전적인[전통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즉 컴펄서리로 정의되는 스포츠 말이다.

 

스케이터들은 컴펄서리에서 더 능률적이어야 했으며, 컴펄서리에서 잘한 선수들이 결국 게임에서 이기게 되어 있었다.

 

이 전통이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현대 피겨 스케이팅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기술의 발전과 피겨 스케이팅의 (경기)포맷이다.

 

역사적인 의미에서, (현대 피겨 이전의) 전통적인 여자 피겨 스케이팅에 대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이 페기 플레밍으로 완결되었다고 한다면, 올브라이트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스케이터였다.

 

 

조직화된 프로그램으로서의 프리 스케이팅은 텐리 올브라이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서, 텐리 올브라이트는 기술적으로 매치된 동시에 컴펄서리로부터 독립되어 확룁된 완벽한 포맷으로서의 조직화된 프리 스케이팅 연기를 처음 보여준 스케이터였다.

 

올브라이트 이전에, 스케이터들의 프리 스케이팅은 다양한 여러 개의 수행요소들을 툭툭 던지는 게 고작이었다.

 

 

 

 

[영상]텐리 올브라이트 - 1953년 미국 내셔널

 

 

 

 

 

 

 

레전드들의 기술(성) 계보?

 

 

 

오늘날의 스케이터들의 (온아이스) 움직임들은 페기 플레밍이 보여준 수준을 뛰어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이 스케이터들에게서 볼 수 있는 모든 동작들은 실제로 페기 플레밍에게서 (이미) 표현되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스프레드이글과 더블 악셀을 결합한 인기를 끄는 동작도 페기 플레밍이 수행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자 피겨 스케이팅에서의 더블 악셀은 올브라이트와 하이스의 시대에 이미 탐험[시도]된 것으로, 페기 플레밍에 의해 재정의되고 완성되었다.

 

 

 

그러한(더블 악셀) 기술은 김연아에게로 완전히 전해 내려왔다. 특히 여러분이 김연아의 더블 악셀을 보면 알겠지만, 신기하리만치 페기 플레밍의 더블 악셀을 연상시킨다. 기술의 측면에서 레전드의 계보는 텐리 올브라이트로 시작해서, 캐롤 하이스와 페기 플레밍, 자넷 린, 도로시 해밀을 거쳐, 김연아로 오롯이 끝을 맺는다.

 



 

 

 

 

 

 

 

트리플 악셀에 대해서도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다. 이토 미도리로 시작해서, 토냐 하딩과 다른 많은 여자선수들이 그 기술에 도전했으며, 아사다 마오가 트리플 악셀을 (경기 프로그램에) 포함시킨 가장 최근 선수였다.

 

그러나 (여자 피겨에서) 트리플 악셀의 기술력은 그것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 이토 미도리의 트리플 악셀은 혁신적인 사건이었지만, 여자 피겨 스케이팅의 이상(ideal)에는 못 미쳤다. 안도 미키는 심지어 쿼드도 시도했지만, 그것은 그녀의 스케이팅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 스케이팅에 녹아들지 못했다; 스케이팅 따로 점프 따로였다).

 

 

 

따라서 기술적으로는, 우리는 여전히 더블 악셀 & 그외 트리플 점프들의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영상]텐리 올브라이트 - 1956년 세계선수권대회 LP

 

 

 

 

 

 

 

 

 

올브라이트의 스케이팅에서 중요한 점은 그녀의 스케이팅이 현대 피겨 스케이팅의 기술적 진화의 바로 초기였다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올브라이트의 동작들과 민첩함을 살펴본다면, 그녀의 기술적인 능숙함이 심지어 페기 플레밍보다도 뛰어날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올브라이트의 신체 움직임들은 오늘날의 스케이터들과 사실상 대등했다.

 

 

옛날의 스케이터를 평가할 땐, 이 스포츠의 정의와는 별개로, 2가지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첫째는 장비이다. 60년 전의 스케이트화가 좋아봤자 얼마나 좋을 수 있었겠는지 생각하시오. 그 시절에는 오늘날의 스케이터들이 누리는 것 같은 스포츠과학의 혜택이 별로 많지 않았다.

 

둘째는 스케이터들이 그들의 연기에서 점프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피겨 스케이팅은 처음부터 에지스킬에 관한 스포츠이다. 이 스포츠가 진화하면서, 다양한 요소들이 속속 (프로그램에) 포함되었고 훈련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초기 피겨 스케이팅에서, 특히 1970년대 이전까지는, 점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당신의 "(컴펄서리) 피겨 도형들"은 에지스킬에 의한 밸런스와 안정성에 의해서(만) 완벽하게 그려질 수 있었다. 점프는 그것과는 거의 관계가 없었다.

 

 

 

 

[영상]1956년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시상식

 

 

 

 

저 당시에 시상식은 (지금과 같은) 메달 수여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ISU)기관에 의해 자행되는 거짓말과 후안무치가 내장된 오늘날의 사기극 스케이팅과 달리, (옛날의 시상식은) 진실되고 위엄이 있는 당당한 것이었다.

 

 

 

 

 

 

 

<사진> 텐리 올브라이트 여사와 김연아 선수

 

(2011년 하버드 대학 연례 자선 아이스쇼 EWC 리셉션에서)

 

 

 

http://www.ifsmagazine.com/articles/15895-inner-loop-online

 

 

 

 

                      출처 http://blog.daum.net/2020wkid/9580 원더키디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