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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영화 방송

2000년대 전 세계를 씹어먹었던 팝 여가수들

2000-2009
 
 
가창력 짱짱한 90년대 디바들의 전성기가 지나가고
본격적으로 댄스 여가수들이 대세가 되어 여솔 춘추전국시대를 열었던 2000년대 팝계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2000년

 

 
< 마돈나 / 브리트니 스피어스 /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
 
세기 말, 대한민국이 테크노에 떠들썩한 와중에 팝계는 라틴음악과 틴팝이 마지막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였다.
 
이 때, 팝의 여왕 마돈나가 다시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온을 위시한 90년대 디바 열풍이
사그라드는 시점이었지만 그들의 커리어가 워낙 강렬했었기에 이 58년생 개띠 여왕의 입지를 충분히 위협하고 있었다.
이에 마돈나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수용한 전작의 성공에 힙입어 그 연장선에 있는 일렉 장르의 앨범 [Music]을 발매한다.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은 동명의 싱글은 빌보드 싱글차트 4주 1위를 비롯해 북미와 유럽차트를 모두 석권하며 연이은 성공을 거두게 되고
팝의 여왕으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된다.
한편, 세계언론과 소녀들의 이목은 모두 어린 두 여가수의 경쟁에 집중되어 있었다. 바로,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다.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친 브리트니는 이듬해인 2000년, [Oops!! I Did It Again]으로 아직까지 깨지지 않는 첫 주 판매량 130만장을 기록하며
 소포모어 징크스까지 씹어먹는다. 이때의 별명은 팝의 신데렐라. 브리트니가 앨범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면 크리스티나는 싱글에서 돋보였다.
데뷔 앨범인 [Christina Aguilera]에서 무려 3곡이나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르게 되고 42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신인상까지 수상하며
대중과 평단의 사랑까지 모두 받았다. 이 두 여가수의 라이벌 구도는 대중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으며
21세기 여성 솔로의 춘추전국시대를 열었다.
 
 
2001년

 

 
< 알리샤 키스 / 카일리 미노그 / 제니퍼 로페즈 >
 
북미에선 21세기를 맞이하여 라틴 열풍이 점점 종적을 감추고 본격적으로 흑인음악의 시대가 도래한다.
 
이 때, 레게머리를 찰랑거리며 등장한 것이 실력파 가수 알리샤 키스.
데뷔 싱글 'Fallin''으로 빌보드차트 6주 1위를 거머쥐고 신인상과 올해의 노래를 포함해 총 5개의 그래미 상을 수상하며 그래미의 여인이 된다.
또한, 알앤비를 메인스트림으로 장악시키는데 일조를 하며 우리나라에 거미나 임정희 같은 가수들이 등장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한편, 미국에서 힙합과 알앤비가 장악하고 있을 때, 유럽에서는 마돈나가 쏘아올린 일렉-댄스팝의 신호탄에 젖어있었다.
호주의 마돈나라 불리는 카일리 미노그 불후의 명곡 <Can't Get You Out of My Head>는 유럽차트에서 무려 16주나 1위를 기록하며
유럽전역을 제대로 조지신다. 2000년대 히트곡을 논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곡으로 제목은 모르지만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곡.
사회적으로 히스패닉이 파워를 갖게 되고 라틴 열풍이 불던 시절 ,그 선두에 서있었던 제니퍼 로페즈 역시
흑인음악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하며 <I'm Real>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5주간 1위를 누리게 된다. 알리샤키스와 엎치락 뒷치락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며 이 때 제니퍼 로페즈는 빌보드와 박스오피스를 종횡무진하며 연예인으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2002년

 

 
 
< 샤키라 / 에이브릴 라빈 / 핑크 >
 
2001년 9.11의 아픈 사건으로 미국 음반 시장이 다소 위축되어 있었지만
2002년은 2000년대 팝계 역사에 있어서 가장 어마무시했던 한 해라 할 수 있다. 이름만 들어도 후덜덜한 대형 여가수들이 피튀기는 전쟁을 시작한다.
 
남미에서 이미 여자 가수로서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 미국에서도 알려져있었던 샤키라가 마침내 세계 시장 진출을 선언, 영어앨범을 내놓게 된다.
내로라 하던 라틴 아티스트들이 모두 미국 진출에 실패하며 라틴 음악이 종적을 감추었던 시기에 그것도 가장 라틴스러운 음악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던 것이다. 하지만, 춤과 라이브가 동시에 가능한 실력으로 대중의 눈과 귀를 홀린 결과, 데뷔 싱글인 <Whenever, Wherever>는
유럽차트 13주 1위를 기록, 데뷔앨범 [Laundry Service]는 총 1300만장을 판매하면서 최후의 라티나 슈퍼스타가 된다.
그야말로 라틴팝의 회광반조.
또한, 브리트니와 크리스티나의 경쟁구도와 신인 여가수들의 꾸준한 수혈로 
이미 충분히 꿀잼이었던 팝계에 캐나다 출신 여가수 에이브릴 라빈이 '혜성같이' 등장한다.
섹시코드로 범벅이 되있던 여가수들의 홍수 속에 티쪼가리를 걸치고 다소 반항적인 눈빛을 내뿜는 에이브릴 라빈은 소녀들의 인기를 한큐에 받는다.
데뷔 앨범 [Let Go]는 전 세계 1600만장을 팔아치우며 동시대 여가수들 중 최고의 판매고를 기록, 바다건너 일본과 한국에까지 큰 인기를 얻는다.
게다가 롱런의 아이콘, 왠만한 남자는 한 방에 쓰러트릴 것 같은 포쓰의 핑크가 마침내 큰 성공을 거두게 되는 한 해였다.
2001년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릴킴, 마야와 같이 콜라보한 <Lady Marmalade>로 실력을 증명한 이후로 허스키한 보컬과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두 번째 앨범 [Misundaztood]가 상당한 인기를 누린다.
 
 
 
2003년

 

 
< 노라존스 /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 비욘세 >
 
재즈를 잘 몰라도 재즈하면 떠오르는 여성싱어 노라존스가 역사적인 성공을 거두는 한 해였다. 2002년 발매한 데뷔앨범 [Come Away With Me]가
좋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2003년 그래미에서 7개 부문을 싹쓸이, 그래미 효과를 톡톡히 보며 무려 2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다.
2000년대 남녀를 통틀어 최고의 판매량을 올린 스튜디오 앨범이며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레전드로 꼽힌다.
라이벌 브리트니가 3장의 앨범을 연이어 성공시키고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껏 받는 동안 크리스티나는 라틴앨범을 내며 때를 기다렸다.
이에 크리스티나는 브리트니보다 우월한 가창력과 더 자극적인 섹시코드로 중무장하며 [Stripped]를 내놓았지만 너무 급격한 변신에 당황한 대중은
점점 그녀를 잊어가는 듯 했으나 두 번째 싱글 <Beautiful>로 전세역전. 역시 골반보다 보컬로 인정받았다. 망할 뻔 했던 2집에
인공호흡을 불어 넣은 결과 특히 영국에서의 큰 히트를 중심으로 전 세계 1000만장을 팔아치우게 되는 대박을 이뤘다.
한편, 북미에서 2003년은 비욘세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리드보컬로 이미 유명했던 비욘세가
여성 솔로로서 데뷔하게 되는 [Dangerously In Love]를 내놓게 된다. 제이지의 지원사격을 받은 불후의 명곡 <Crazy In Love>는 8주간의
빌보드 싱글차트 1위, <Baby Boy>는 9주간 1위를 하며 17주 동안 빌보드의 정상에 올랐다. 이렇게 여러 곡으로 빌보드 장기집권을 한 여가수로는 머라이어 캐리 이후로 처음이며 2000년대 빌보드 여왕의 탄생이었다. 결점 하나 없는 라이브에 춤실력까지 겸비한 그녀의
퍼포먼스는 대중에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고 이듬해의 그래미에서 5개 부문을 수상하며 솔로 커리어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2004년

 

 
< 알리샤 키스 / 에이브릴 라빈 / 브리트니 스피어어스 >
 
여성의 파워가 도드라졌었던 이전에 비해 다소 주춤했던 시기라 살짝 심심했던 팝계.
특별한 슈퍼루키도 없었고 기존 가수들에게도 특별한 초대박 싱글이나 앨범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2000년대 초반에 너무 대형 여가수들이 많이 등장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초반에 데뷔한 가수들이 2000년대 전체를 번갈아가며
씹어드시며 후반에 가서야 대형 신인들이 등장한다.
 
2004년의 빌보드는 어셔, 알리샤키스와 시아라등 흑인 가수가 점령했다. 그 중에서도 여성 가수로는 단연 알리샤 키스.
이 때 발매한 앨범이 [Diary of Alicia Keys]로 그 유명한 <If I Ain't Got You>가 수록되어있다. 패기있게 패도라를 쓰고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지금까지 알리샤 키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만들게 했다라고 할 정도로 그녀 커리어 중에 가장 인상깊었으며
비욘세와 함께 흑인 여가수로서 입지를 다진 시기. 
1집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에이브릴 라빈 다소 어두운 분위기의 2집 [Under My Skin]으로 컴백한다. 당시에 소포모어 징크스다라는 말이
있었지만 1집이 워낙에 센세이셔널 했던 것일 뿐, 2집도 900만장을 팔아치우며 준수한 판매량에 곡의 퀄리티도 우수했다.
당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렸고 한국에서도 팝 여가수들 중 가장 많은 카페 회원수를 자랑하는 등 에이브릴 라빈의 명성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3장의 앨범을 연이어 성공시킨 브리트니가 4집 [In The Zone]로 돌아왔다.
마돈나의 후계자 수여를 공식화 하는 듯한 타이틀 곡으로 광역 도발을 시전했으나 싱글의 부진에 앨범은 총 700만장인 중박에 그치는 등
전작에 비해서는 주춤한 듯 보였다. 게다가 저스틴 팀버레이크와의 결별, 혼전순결 드립이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이미지 실추가 되는 등 악재가
겹쳤으나 마돈나와의 키스 퍼포먼스, 회심의 역작 <Toxic>등으로 인해 여전히 건재함을 알린다.
 
 
 
 
2005년

 

 
< 마돈나 / 머라이어 캐리 / 그웬 스테파니 >
 
이름하여 언니가 돌아왔다 특집
 
마돈나의 전작인 [American Life(2003)]는 너무 우여곡절이 많았다. 부시정부를 비난하는 반전 뮤직비디오를 폐기처분 해야했고 판매량이나
성적도 썩 좋지 않아 마돈나 커리어에 상업적인 오점으로 남게 된다. 그에 와신상담을 했는지 근육질의 비주얼에 디스코로 중무장하고 나왔다.
아바의 'Gimme! Gimme!'를 샘플링한 디스코 댄스 <Hung Up>으로 유럽은 그야말로 초.토.화. 유럽차트 12주간 1위를 수성하게 된다.
유럽뿐만이 아닌 중남미로까지 대박이 이어져 비공식차트를 포함한 40여개국 차트 1위를 기록, 기네스 북에 등재되기에 이른다.
마돈나가 현재의 마돈나일 수 있는 이유, 58년생 개띠의 동갑내기 마이클잭슨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레전드로 꼽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의 대박이 큰 한 몫을 했다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레전드, 머라이어 캐리. 90년대를 통틀어 쟁쟁한 아티스트들을 제치고 빌보드 최고의 아티스트로 만천하에 군림하던 그녀는
90년대 말, 셀린 디온에게 디바여왕의 자리를 물려주고 2000년대 들어서 본인의 이름을 내건
영화까지 망하게 되며 슬럼프의 나날을 보냈지만 팝에서 벗어나 힙합을 포용한 결과 절치부심의 역작 <We Belong Together>가
빌보드 14주 동안이나 1위를 거머쥐며 정말 화려하게 복귀한다. 권토중래가 따로없다.
또한, 15년만에 그래미를 수상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한편, 90년대 여성 락을 대표하는 노다웃의 보컬 그웬 스테파티 솔로로서 역량을 발휘한 한 해였다.
첫 솔로 앨범은 [Love.Angel.Music.Baby]를 발매하고 다소 괴기하고 통통튀는 댄스로 인기를 끌었다.
<Hollaback Girl>은 빌보드 4주 1위를 비롯 최초로 디지털 판매량 100만장을 넘어선 싱글로 남아있다.
 
 
2006년

 

 
< 샤키라 / 넬리퍼타도 / 켈리클락슨 >
 
2006년은 대형가수들의 피튀기는 경쟁과 신인 가수들의 주옥같은 명곡들을 배출해 내며 팝팬들에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한 해였다.
 
샤키라는 2005년, 스페인어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이에 힘입어 4년만의 영어앨범을 발매한다.
하지만 리드싱글의 인기가 다소 부진하여 이대로 묻히는 듯 했으나 2000년대 최고의 싱글이라고 불리는 <Hips Don't Lie>로 단숨에 회복한다.
커리어 최초로 빌보드의 정상을 차지하게 되고 유럽차트 15주 1위등
전 세계 50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1위를 거머쥐며 이전에 마돈나가 가지고 있던 기록을 몇 개월만에 갈아치워버린다. 또한, 2006 독일 월드컵의
결승전을 장식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월드컵 가수'라는 타이틀의 시발점이되는 곡이기도 하다.
2002년에 이은 큰 성공으로 내로라 하는 가수들이 하나도 가지기 힘든 메가히트곡을 2곡을 보유하게 되며 2000년대 싱글의 여왕이 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열중에 열 명은 모를 것 같은 가수 넬리퍼타도의 기세가 등등했다. 샤키라가 싱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면
넬리 퍼타도는 앨범과 싱글차트 모두를 석권한다. 이미 그래미상에서 수상해 실력을 입증한 바가 있었지만
2000년대 중반 최고의 프로듀서 팀버랜드와의 합작으로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할 수 있게 된다. <Promiscuous>가 6주 간 1위를,
<All Good Things>와 <Say It Right>가 연이어 히트를 치면서 새로운 대형 여가수의 등장을 알렸다.
아메리칸 아이돌이 낳은 최고의 스타 켈리 클락슨 2004년 두 번째 앨범 [Breakaway]를 발매하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가장 인기를 누렸던 2005년에는 3명을 맞추다 보니 2006년에 쓰게된다.
 2004년 11월에 발매한 앨범이 2006년까지 인기가 있었을 정도로 한 앨범으로
긴 시간동안 사랑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Because of You>가 유럽에서는 2006년에 1위를 하게 되고 미국에서는 2006년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가 된 아티스트로 팝계의 신데렐라로 불렸다.
 
 
2007년

 

 
<비욘세, 리한나, 퍼기 >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에 돌입하게 되고 재빠른 소비력을 가진 10대의 영향력이 강해지기 시작한 시기.
 
2006년 드림걸즈로 박스오피스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낸 비욘세
[B' Day]로 컴백하지만 리드싱글 <Dejavu>의 예상치 못한 부진에 예전만하지 못한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세번째 싱글 <Irreplacable>이 빌보드 10주간 1위를 차지하면서 비욘세 솔로 커리어중 최장 기간 1위곡을 배출해낸다.
게다가 당시 유럽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샤키라와의 듀엣 <beautiful Liar>를 성사해내며 큰 화제를 불러모았고
독일이나 프랑스와 같은 유럽국가에서 최초로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 시기 비욘세는 박스오피스와 빌보드 모두 성공하며
제니퍼 로페즈와 같은 광경을 연출했다. 
 여기에 희대의 뱃비취가 등장하는데 바로 리한나다. 앨범명도 [Good Girl Gone Bad]다.
리한나는 이전에 'SOS'로 빌보드 3주간 1위를 하며 인기를 끌었지만 2007년 제이지의 지원사격을 얻은 <Umbrella>로 7주간 1위를 차지하며
제대로 스타덤에 떠오른다.
무서운 언니라면 한번은 해야한다는 쇼트컷의 비주얼로 뮤직비디오가 연일 화제였으며 비욘세의 뒤를 잇는 흑인 댄스 가수로 주목을 받는다.
또한, 블랙아이드피스의 홍일점인 퍼기가 그웬 스테파니처럼 성공적으로 솔로 데뷔를 하게 되는데 2006년 <London Bridge>로 3주간 1위를 달성하고
이후 <Big Girls Don't Cry>로 발라드 넘버로도 1위를 차지하게 되며 그룹을 벗어나 솔로로서의 역량도 충분히 발휘했다.
 
 
2008년

 

 
< 리오나 루이스 / 케이티 페리 / 핑크 >
 
2008년은 오랜만에 대형 신인 여가수가 등장한 한 해이다.
 
켈리클락슨 이후로 오디션 프로그램이 발굴해 낸 세계적인 스타인 리오나 루이스. 머라이어 캐리의 기교, 앨라니스 모리셋의 비음을
모두 겸비한 완벽한 보컬로 영국에서는 이미 슈퍼스타 된 후 발매한 <Bleeding Love>는 빌보드차트 4주 1위를 기록, 유럽차트에서도 5주 1위를
차지한데다 롱런을 달리며 2000년대 최고의 발라드 곡으로 기억되게 된다.  
한편, 미국에서는 향후 2010년대의 빌보드를 조지게 될 케이티 페리가 데뷔한다. 이때부터 차트를 하도 조져놔서 별명도 조진연이다.
2001년에 CCM앨범을 내기도 했으나 심하게 망한 후 소속사를 여기저기 옮겨다니다가 결국 절치부심하여 내놓은 것이 바로 <I Kissed a Girl>.
이 곡으로 케이티 페리는 빌보드 7주 1위를 비롯, 유럽차트까지 10주 1위를 석권하며 미국과 유럽을 호령하는 새로운 여성 솔로 가수로 급부상하게 되고, 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외모에 똘기 충만한 성격은 곧바로 대중의 인기를 받으며 새로운 스타일의 '아메리칸 스윗하트'가 되었다.
또한, 꾸준히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나가던 핑크 <So What>으로 오랜만에 빌보드 정상을 탈환하며 롱런의 아이콘으로 우뚝섰다.
위에 언급된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샤키라, 에이브릴 라빈처럼 한번도 폭발적이었던 적은 없으나
한번도 폭망한 적이 없었을 뿐더러 커리어 상으로 봐도 전혀 꿀리지 않으며 여전히 월드투어가 가능한 몇 안되는 여성 솔로로서 유지하고 있다. 
 
 
2009년

 

 
< 레이디 가가 / 비욘세 / 테일러 스위프트 >
 
90년대가 3대디바를 위시한 위,촉,오의 삼국시대였다면
여성 솔로가수들의 치열한 춘추전국시대였던 2000년대 팝계를 뒤로하고
이제는 5호16국 시대라 할 수 있는 여성가수들의 총체적 난국, 과부하상태인 2010년대를 준비하는 시기인 2009년.
 
그 선두에는 레이디 가가 있었다. 클럽음악이 본격적으로 메인스트림으로 진출하던 시기에 금발 머리를 리본으로 만들고
케이티 페리와는 다른 약간은 기괴한 똘기를 뽐낸 그녀를 한국,일본에서도 먼저 스타탄생을 알아채며 글로벌 스타로서 데뷔한다.
데뷔싱글인 <Just Dance>가 3주간의 1위를 하며 주목을 받게 되지만 진정으로 그녀를 최고의 자리로 이끈 것은 바로 유명한 <Pokerface>다.
당시 미국에선 블랙아이드피스의 90년대 머라이어 캐리를 보는 듯한 말도안돼는 기세에 밀려 1주 1위에 그치지만,
유럽차트에선 16주간이나 1위를 수성하며 앨범 <The Fame>,<The Fame Monster>가 13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고 
포스트 마돈나라는 별명까지 생기는 등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된다.
이에 빌보드의 여왕 비욘세까지 가세해 <Single ladies(Put a ring on it)>로 4주간 1위를 차지하며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이때부터 비욘세는 본격적으로 다른 여자 가수들보다 한 단계 높은 극강의 퍼포먼스를 구사하며 완전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예전처럼 빌보드에서 장기집권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음악적 장르로인해 깨지못했던 유럽시장에 앨범으로써 좀 더 호소할 수 있게 된다.
한편, 마일리 사이러스와 함께 소녀들의 대통령으로 군림하기 시작한 테일러 스위프트가 미국내의 입지를 다지게 되는 한 해다.
브리트니 스피어스,힐러리 더프로 대표되는 소녀들의 우상의 계보가 한동안 끊긴 팝계는 젊은피의 수혈이 시급했고
2집 [Fearless]는 미국 내에서만 660만장을 팔아치우며 전작에 이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 기근에 허덕이는 소녀들의 지갑을 열게했다.
 
 
*참고: 각종 차트, 미디어트래픽, 위키피디아, 엔하위키
 
 
 
2000년대는 바야흐로 여가수들의 춘추전국시대였다.
90년대는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셀린 디온, 마돈나, 자넷 잭슨, 토니 브랙스턴 등 몇 명으로 축약된다쳐도
21세기는 모두가 한 조각씩 나눠갖는 형태를 가졌고 누가 확실히 뛰어났다라 볼 수 없는게 지역에 따라서도 인기가 달랐다.
또한, 이 시기를 주름잡은 여가수들이 아직까지 건재한 경우가 많고 위에 언급된 아티스트들 외에도 수 많은 여성가수들이 한 가락했다.
년도별로 3명을 굳이 맞출려고 했고 필자의 지식이 광범위하지 않아서 다이도나 에이미 와인하우스, 더피, 시아라, 아나스타샤등을
언급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SNS나 유투브가 활발하지 않았던 시기이기 때문에 미디어의 노출이 잦지 않아 지금처럼 그 인기가 꾸준히 유지되기에는
힘들었지만 음악만으로 다시 재기에 성공하는 꿀잼 포인트가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위에 나열 된 여가수들의 히트곡을 다시 한번 들으며 추억에 잠겨 보시길 바라며
팝이 생소한 분들에게는 다양한 음악을 들어볼 수 있게 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출처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200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