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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폼페오 마리아니 - 480번의 전시회 참석

화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전시회에 출품해서 평론가들과 대중들의 평가를 받습니다. 또 이런 기회를 통해서 작품을 판매하고 그 것이

또 다른 작품 제작의 기반이 됩니다. 오늘은 제가 이제까지 만났던 화가 중에서 가장 많은 전시회에 참여했고 좋은 성과를 얻었던

이탈리아 화가 폼페오 마리아니 (Pompeo Mariani /1857~ 1927) 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 그에 대한 저의 느낌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화가가 아니었을까였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멋진 카페의 여인An Elegant Lady in Black in a Cafe

여인의 옆자리가 아직 비어 있습니다. 이 곳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도착할 시간은 이미 한참 지났습니다. 한 손으로 턱을 괸 여인의 눈빛은 몽롱하고 건너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흐릿합니다.

여인의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요? 몸을 바에 기댄 것으로 봐서는 취기가 제법 오른 듯 합니다.

늦더라도 와 준다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기다림은 용서와 증오가 적당한 비율로 반죽된 케이크와 같습니다.

끝없이 용서와 증오 사이를 오가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증오가 많아 진다는 것이지요.

여인의 몸이 더 기울어지면 곤란합니다.

마리아니는 밀라노 근처의 몬자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상업학교를 나와 사업을 했고 어머니는 화가의 딸이었습니다.

그의 이모는 당시 유명한 여류 화가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마리아니를 아버지는 은행원으로 키우고 싶어 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밀라노에 있는 은행으로 간 그는 친구의 소개로 예술과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소개 받게 됩니다.

이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은 계기가 됩니다.

 

 

제노바 항구의 일몰Sunset Over The Port of Genoa / 50.2cm x 69.9cm / oil on board

해가 지는 제노바 항구의 모든 것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석양은 수평선에 띠로 자리를 잡았고 그 위의 구름도 곧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붉은 덩어리로 변하고 있습니다.

방금 도착한 배에서 내린 물건들을 서둘러 옮기는 사람들로 부두는 소란스럽습니다. 그들의 모습에도 저무는 하루가 담겨 있습니다.

모두가 무사하게 돌아 올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가끔 일몰은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약속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녁 무렵 항구에 가면 가슴이 뛰었던 모양입니다.

마리아니가 가입한 모임에는 엔리코 보이토와 같은 음악가를 포함 화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밀라노에 있는 라 스칼라 극장을 찾곤 했는데 마리아니는 음악과 캐리커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가 다니는 은행의 지배인을 캐리커쳐의 소재로 삼아 마리아니는 위트가 담긴 작품을 그렸고 회원들의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알게 된 은행으로부터 해고를 당하고 맙니다.

치사하지만 어쩔 수 없었겠지요.

 

 

뱃사람의 이별The Sailor's Farewell / 1897

아직 물러 나지 않은 간밤의 구름들 사이로 멀리 아침 해가 떠 오르고 있습니다.

바다로 떠날 준비를 하는 배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부두 위, 헤어지는 남녀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기댄 여인이나 그런 여인의 손을 잡고 있는 남자의 지금 마음이 어떨지 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살면서 수 많은 이별을 경험했고 이제는 면역이 생겨서 흔들릴 것 같지 않은데도 여전히 이별은 쉽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마음의 크기만큼 비는 곳이 생기기 때문이겠지요.

꼭 다시 만난다는 약속만 지켜진다면 잠시의 이별은 견딜 만 합니다.

,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고향으로 돌아 온 마리아니를 친구들이 다시 밀라노를 불러 올립니다.

마리아니는 밀라노에서 엘로이테이로 파글리아스라는 화가를 소개 받는데 마리아니는 그의 작품에 푹 빠지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화가가 될 자질이 있는지를 알아 보려고 파글리아스에게 몇 가지 기법을 배웁니다.

파글리아스는 그에게 자신의 화실에서 본 것을 야외에 나가 그려 보라고 합니다. 물론 마리아니는 자신의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말 것을 부탁합니다. 은행원이 되어야 하는데 화가가 된다면 집안의 반응이 어떨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스칼라 극장의 특별석 Box at La Scala / 29cm x 24cm / oil on cardboard / c.1900

극장 특별석에 앉은 여인들의 미모가 눈부십니다. 그녀들 뒤로 망원경을 든 여인과 신사가 등장했습니다.

예전에 극장 특별석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극장의 특별석은 가끔 돈 많은 남자와

젊은 여인들의 밀회의 장소로 쓰였다고 합니다. 모두가 무대를 향해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동안, 둘 만의 시간을 갖기에는 그만이었겠지요.

그림을 보다가 못된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망원경을 든 여인이 혹시 중년의 남자를 이 곳으로 안내한 것은 아닐까요?

검은 머리 여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거든요. 공연보다는 다른 것에 더 신경을 쓰는 듯 합니다.

마침 파글리아스 화실을 찾았던 주세페 데 니티 (http://blog.naver.com/dkseon00/140077427845)가 이 작품을 보고

마리아니의 삼촌에게 그의 미술에 대한 재능에 대해 알려 줍니다. 삼촌은 미술을 반대하는 가족들 앞에서 마리아니를 칭찬하고

화가가 되라고 격려합니다. 삼촌은 이후 마리아니의 든든한 지원자가 됩니다.

제 상상이지만 그의 삼촌이 없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마리아니라는 화가를 영영 못 볼 수 도 있었습니다.

 

 

밀라노의 호텔 라운지Old Milan, a Hotel Lounge

밀라노의 어떤 지명이 아닐까 싶어 Old Milan을 검색 해보았는데 미국의 지명의 나오더군요. 그 바람에 제목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아쉬운 대로 옛 밀라노의 호텔 라운지라고 붙여 보았습니다.

호텔에 막 도착해서 기다리는 사람과 계산을 끝내고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 호텔에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라운지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출장 길, 호텔 라운지에 앉아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곤 합니다.

그 곳에서는 누군가를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붉은 모자를 쓰고 책을 보고 있는 여인이 제 눈길을 끕니다.

도드라져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출발을 앞둔 설렘 같은 것이 느껴지거든요.

스물 세 살이 되던 해 마리아니는 친구들의 권유에 따라 그림에 대한 경험을 쌓기 위해 그들과 함께 이집트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다음 해 4,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모래 폭풍을 만나게 되었고 이 때 오른쪽 눈을 다치게 됩니다.

결국 이탈리아로 귀국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 때 그린 작품들은 밀라노와 로마, 니스에서 전시되고 특히 밀라노 전시회에서는

금메달을 수상합니다. 작품도 전시 즉시 모두 팔리면서 화가로서의 화려한 경력이 시작됩니다.

 

 

겨울 풍경 속의 사냥꾼Hunter in Winter Landscape / 30.7cm x 45.7cm / oil on panel / 1894

하늘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이 회색으로 뭉쳐있습니다. 이미 내린 눈이 꽤 쌓였는데 다시 눈이 내릴 모양입니다.

사냥개를 데리고 사냥꾼이 등장했습니다. 총을 들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그의 앞에 새 몇 마리가 강가에 앉아 있습니다.

눈치 빠른 녀석들은 벌써 줄을 지어 건너 숲으로 날아가고 있는데 아직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 새들의 앞날이 걱정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별 문제 없겠군요. 눈 밟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 그리고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새들을 곧 날아가게 할 것 같거든요.

엉거주춤 다가서는 사냥꾼, 또 쓴 맛을 다시게 될 것 같습니다.

이후 여러 전시회에서 수상을 한 마리아니는 밀라노 근교의 레꼬라는 곳에 화실을 열게 됩니다. 3년 뒤, 리버풀에서 열린 전시회에서도

은메달을 수상하는데 이 해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납니다. 은행원으로 그를 키우고자 했지만 화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으니

아들에 대한 서운함은 없었겠지요.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마리아니는 더욱 그림에 열중하게 됩니다.

 

 

편지The Letter / 49cm x 34cm / oil on cardboard / 1908

편지를 쓰는 여인의 고개가 점점 더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편지를 써야 하니까 종이와 펜을 가져 달라고 했을 때 여인의 자세는 꼿꼿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손으로 턱을 살짝 괴더니 어느 순간

머리를 받치기 시작했습니다. 몇 장의 편지지를 꾸겨 던지고 물을 가져 달라고 하더니 편지지의 중간에서 멈춘 펜은 더 이상

나가지를 않더군요. 할 말은 가슴에 가득한데 그 것이 손가락 끝까지 오지 못하는 이유는 감정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겠지요.

말보다 쓰는 것이 좋은 것은 감정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쓰지 말고 내일쯤 쓰면 더 편하게 쓸 것 같습니다.

제가 여인에게 슬쩍 던져 주고 싶은 말입니다.

편지도 고치고 또 고치면 시가 되거든요.

이 무렵 마리아니 작품의 주제는 그가 태어난 몬자 근처의 시골 풍경뿐만 아니라 밀라노 중, 상류층의 유명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까지 확대 되었습니다. 1889년에는 움베르토 이탈리아 왕의 초상화 제작 의뢰를 받고 로마로 갑니다.

이탈리아에서는 화가로서 확실한 지위를 확보했다는 뜻이겠지요. 훗날 베를린 주재 이탈리아 대사관의 요청으로 마리아니는

움베르토 왕의 초상화를 한 번 더 그리게 됩니다.

 

 

바다에서 돌아 오는 Back From Fishing / 1918

바다에서 배가 돌아 왔다는 소식을 듣고 여인은 걸음을 서둘러 선착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한 아이를 안고 또 한 아이와 함께 걷는 여인의 발걸음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길이 평탄하지 않아 넘어질 것 같은 엄마와 아이의 모습에

보는 제가 더 걱정이 됩니다. 벌써 도착한 여인들이 멀리 보이는데 우선 크게 불러라도 보고 싶겠지요.

당신, 잘 다녀 왔어요?

다행히 바다는 잔잔하고 날도 맑아서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바다라는 곳이 워낙 순간순간 표변하는 곳이니 마음을 놀 수 없었겠지요.

캄캄해지기 전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1889, 마리아니는 파리 만국 박람회에 작품을 출품하는데 선외 가작으로 뽑힙니다. 그리고 4년 뒤 시카고 세계 박람회에도 출품 하는데

그의 이름이 국외에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됩니다. 마리아니는 자신이 태어난 몬자 주변의 논과 그 곳에서 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모습을

연작으로 제작합니다. 작품들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전시되었는데 관객들로부터는 명성을, 평론가들로부터는 호평를 받았고

이 모든 결과로 그는 경제적인 부유함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복 받은 화가입니다.

 

 

논에서 잡초제거 하는 사람들, 젤라타Rice Weeders in Zelata / 34cm x 51.5cm / oil on canvas

밀라노에서 멀지 않은 젤라타라는 지역의 논 농사 장면입니다.

농사를 모르니 지금 장면이 어떤 것을 묘사한지는 알 수 없지만 모내기를 하기 전에 물을 가두어 놓은 곳에 자랐던 잡초를 제거하는 것

아닐까라는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노동의 고단함 같은 것이 있을 법한데 그림은 아주 맑고 시원합니다.

논에 비친 하늘의 구름과 경쾌한 사람들의 묘사가 더 해지면서 마치 비가 온 다음 날 같은 깨끗한 장면이 만들어졌습니다.

문득 나이든 노인들이 지키는 우리 농촌이 생각났습니다. 언제쯤 이런 시원한 그림으로 등장할 수 있을까요 --

1904, 마리아니가 화가가 될 수 있게 도와주었던 삼촌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삼촌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살면서 인생을 바꿔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만큼 큰 행운도 없지요. 제게는 그런 분이 두 분 계시니까 저도 행운이 많은 사람입니다.

쉰 살이 되던 해, 마리아니는 친구들의 소개로 나나라는 예명을 가진 가수와 결혼합니다. 둘 사이에는 딸을 하나 낳게 됩니다.

늦은 나이에 장가를 갔지만 결혼 생활은 좋았던 것 같습니다.

 

 

룰렛 기술자Engineers of the Roulette / 36cm x 26cm / oil on cardboard / 1910

룰렛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영화에서는 자주 만났습니다. 회전판 위에 주사위를 던지는 광경은 말 그대로 확률의 싸움입니다.

도박을 계속 해서 이길 확률은 수학적으로는 0에 가깝지요. 머리를 감싼 남자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 나왔습니다.

잘못 걸었어!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여인의 입에 미소가 걸렸습니다.

이제 그만 하세요.

즐긴다는 것은 승부와 관계없는 차원입니다. 생각해보면 인생도 즐기는 것이지 승부의 세계는 아닙니다.

간혹 모든 일을 승부로 여기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승부사라는 말이 참 거슬립니다.

무엇이든 승부는 한 번이면 족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마리아니는 자주 몬테 카를로를 방문합니다. 그 곳의 우아한 일상과 카지노와 카페에서 만날 수 있는 최신 유행의 여인들이

그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 그의 작품에는 근처 해안 풍경과 카지노 내부의 모습, 올리브 농장 등이 담겼습니다.

그리고 이런 작품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는데 대단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초록 테이블에서At the Green Table / oil on cardboard / 1916

카지노의 녹색 테이블 위, 도박 패와 칩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테이블 주변에 앉은 사람들 중에는 돈을 잃어 고민에 빠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깨 너머로 게임을 지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턱을 괴고 앉아 게임으로부터 애써 눈길을 돌리고 있는 여인이 보입니다. 그녀 앞에는 아직 게임에 참가할 수 있는 칩이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인은 게임보다는 다른 것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카지노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세계가 숨어 있으니까 여인의 마음을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모르는 다른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일차대전 이후에 작품 제작에만 몰두한 그는 1923, 다시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대중들 앞에 등장합니다.

밀라노에서 그의 작품 전시회가 열리는데 모두 348점이었다고 합니다.

그 해 마리아니는 아내와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나이 일흔이었습니다.

생전에 480개의 전시회에 출품 했고 11개의 금메달과 9개의 은메달 그리고 수 많은 영예를 얻었으니

이 이상 행복한 화가도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마리아니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