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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 화가들의 행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끝내고 미국에서 활동한 화가들이 있는가 하면 파리에서 공부를 한 후 그 곳에서 정착하거나

다시 미국으로 돌아 오는 경우입니다. 세 번째는 독일의 뮌헨으로 갔다가 파리를 거쳐 미국으로 돌아 오는 길을 택한 화가들도 있는데

월터 맥이웬 (Walter MacEwen /1858~1943)은 세 번째에 가까운 길을 걸었던 풍속화가이자 초상화가였습니다.

 

 

 

 

 

귀신 이야기 The Ghost Story / 1887

실을 잣기 위해 여인들이 모였습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수다가 시작되었는데 그만 귀신 이야기를 흐르고 말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가운데 앉아 이야기를 하는 여인에게 집중 되었습니다.

여인의 낮은 목소리를 모두들 숨을 죽이고 듣고 있는데, 꼴깍하고 침이 넘어 가는 소리도 들릴 것 같습니다.

귀신 이야기가 너무 생생해서 듣고 있는 여인들도 긴장한 모습입니다.

창 밖은 햇빛이 가득하고 살내도 환하지만 인형을 든 어린 소녀에게 펼쳐진 상상의 귀신 이야기는 충분히 무서운 것 같습니다.

표정이 굳어 있거든요.

그런데 예전에는 귀신들이 무서웠지만 지금은 사람이 더 무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닌가요?

맥이웬은 시카고에서 태어났습니다.

열 여덟이 되던 해 노스트웨스트 대학에 입학해서 회계를 배우며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일을 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업을 잇게 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사무실에 한 가난한 사람이 들르게 됩니다.

그리고 맥이윈의 인생 항로를 바꾸게 하는 사건이 일어 납니다.

 

 

 

편지 The Letter / 29.2cm x 24.1cm / oil on canvas / c.1885

볕이 드는 창가에 놓인 테이블에 몸을 기대고 편지를 펼쳤습니다.

기다리던 편지였지만 내용은 그녀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을까요? 편지를 읽어 가는 여인의 눈이 신중합니다.

예전에 한참 편지를 쓰고 받았을 때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편지를 보낸 사람의 얼굴이 읽는 내내 함께 했던 기억이 납니다.

손으로 쓴 편지의 힘이었지요.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들의 모습은 많은 화가들의 작품 소재였는데, 기다리는 간절함이 더하기 때문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생각해보니까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남자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그나저나 편지에 쓰인 내용이 궁금합니다. 나쁜 것만 아니면 좋겠습니다.

가난한 방문객은 10달러를 대출받고자 했습니다. 담보물은 그가 들고 온 그림 그리는 도구 일체였습니다.

계약서를 쓰고 대출을 받은 그 남자는, 그러나 그 후 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맥이웬은 찾아 가지 않은 화구 박스를 열고 그 안에 있는 것들을 가지고 몇 가지 그림을 그려 보았습니다.

의외로 그림에 흥미를 느낀 맥이웬은 화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화가가 되기로 한 계기가 마치 소설 같지만 제 생각에 타고 난 재주가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공증인 The Notary

이 곳에 서명을 하시면 됩니다. 그러고 나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공증인이 가리키는 곳에 여인이 펜을 들고 서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순간 여인의 표정에 망설임이 떠 올랐습니다.

공증은 약속의 증거입니다. 확실하다는 것을 법적으로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적인 일에는 꼭 필요한 것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비정함도 잊어서는 안 될 일이지요.

어떤 것에 대한 공증인지 알 수 없지만 서류가 아니어도 약속이 지켜질 수 있는 세상은 이미 기대하기 어렵게 된 지금,

어쩌면 여인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일 수 도 있습니다.

1877, 열 아홉이 된 맥이웬은 대학을 그만두고 화가가 되기 위해 독일 뮌헨으로 건너갑니다.

아마 아버지의 실망은 대단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뮌헨 아카데미에 입학 한 맥이웬은 그 후 60년간 유럽에서 머물게 되는데

그 때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겠지요.

뮌헨 아카데미는 17세기 독일 화단의 작품들을 가르쳤는데 뮌헨의 주변 풍경과 연계해서 구체적인 주제를 선정하는 교육을 했고

초상화와 풍경화에 강점이 있었습니다.

 

 

책을 들고 있는 소녀 Girl Standing With Book

모자를 팔목에 걸고 소녀가 책을 펴 들었습니다.

, 이제 움직이지 말고 앞을 보세요.

마치 이런 소리가 함께 들리는 듯 합니다. 사진관에서 모델을 세워 놓고 사진을 찍듯 그림에 그런 느낌을 담았습니다.

사진기가 발명되고 난 후, 그림은 간혹 사진과 비슷한 구성을 가져오곤 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그런 느낌이 납니다.

책에 반사된 햇빛이 소녀의 얼굴에 닿아 얼굴에 옅은 그림자가 생겼지만 소녀의 귀여움은 감출 수가 없군요.

그러나 맥이웬의 뮌헨 아카데미 수업이 편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듣고 싶은 과목이나 교수를 선택할 권리가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교육 과정은 엄격했고 결국 맥이웬은 아카데미를 떠납니다. 열혈 청년이었습니다.

그 후 그가 누구에게서 그림을 배웠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1880년에 뮌헨 아카데미에서 은메달을 수상했다는 것을 보면 아카데미와 완전히 인연을 끝낸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 A Story for Children / 50.8cm x 73.7cm / oil on canvas / c.1890

그래서 산을 넘어 가는데 갑자기 시커먼 괴물이 나타났어요!

선생님의 이야기에 아이들의 표정이 심각해졌습니다. 저 정도 나이면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집중하기 어려운데

모든 아이들이 석상처럼 굳은 자세로 선생님 이야기에 빠져 든 것을 보면 선생님의 이야기 솜씨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지금 아이들 머리 속에는 온갖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겠지요. 상상력은 사람을 키우는 양식 중 하나입니다.

높은 의자에 앉아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때가 가장 풍부할 때이고 발이 땅에 닿는 순간 급격하게 줄어듭니다.

어렸을 때 높은 곳에 앉아 발을 흔들거리고 있으면 몸에 날개가 돋는 것 같았던 느낌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감히 꿈도 못 꾸는 그런 느낌이 있었지요.

뮌헨에서 잘 지내던 맥이웬은 파리로 거처를 옮겨 아카데미 줄리앙에 입학합니다.

이 곳 역시 많은 미국 출신 화가들이 공부하던 곳이었지요. 맥이웬은 파리 살롱전에 작품을 출품했는데 대단한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 동안 쌓인 내공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 준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맥이웬은 헤이그파의 작품에 집중하게 됩니다.

 

기다림 The Waiting

슬며시 커튼을 열었습니다. 아직 도착하기로 한 시간은 남았지만 도저히 그 때까지 견딜 수 가 없습니다.

방금 보고 돌아 섰지만 다시 커튼을 열 수 밖에 없습니다.

커튼을 모두 열어 놓고 창 밖을 보고 싶지만 혹시라도 기다리는 모습을 들키면 부끄러울 것 같아 이렇게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은 사람을 때에 따라 절망케 하지만 확실한 기다림은 견딜 만 합니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을 휘젓고 있는 동안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길거리에서, 다방에서, 책방에서

사람을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기억할 겁니다.

그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모든 생각들이 순간에 사라졌던 것 말입니다.

당시 네덜란드 헤이그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화가들은 그 곳 주변의 풍경과 어촌 사람들의 일상을 주제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 대가들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맥이웬도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신을 대표하는 화풍으로 발전시키게 됩니다.

파리에 살던 그는 네덜란드 중세풍의 도시인 하템에 화실을 열고 여름이면 이 곳에서 지내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위령의 날의 빈자리 The Absent One on All Souls' Day / oil on canvas /1889

위령의 날은 세상을 떠난 모든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기억하는 날입니다.

앞자리에 앉은 여인이 보고 있는 책은 아마 성경인 것 같습니다. 그녀 뒤에 노인이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노인 옆에 희미하게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이 등장했습니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함께 펼쳐졌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미 세상을 떠난 영혼을 생각하는 순간 그 분들이 그림 속 할머니처럼 우리 옆에 오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파리에 정착해서 화가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던 맥이웬은 1910년 이후 작품수가 감소합니다.

또 네덜란드의 풍경을 주로 그리던 것에서 당시의 파리 풍경이 자주 등장하게 됩니다.

예순이 넘자 맥이웬은 화가라는 직업에서 은퇴를 합니다. 예술가들에게 은퇴라는 것이 있는가 싶지만 기록은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마 더 이상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마음으로부터 자유스러워졌다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제국의 여인 A Woman of the Empire / 188cm x 40cm / oil on canvas / c.1902

제목만 놓고 본다면 이 여인은 왕녀쯤 되겠지요. 주변 배경을 보니 일반 가정집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거울을 통해 보이는 여인의 표정이 차분합니다. 활기가 넘친다기 보다는 절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왕궁의 생활이 주는 엄격함과 따분함 같은 것이 섞여 있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맥이웬의 다재 다능한 재능이 유감없이 표현된 작품 속 여인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가끔은 나를 둘러 싸고 있는 것에서 과감하게 떠나 보세요. 조금 버거울 수도 있지만 활력을 찾는 데는 그 것 이상 좋은 것이 없거든요.

맥이웬에게 60년 가까이 살던 파리에서 떠나야 할 일이 일어 났습니다. 2차 대전이 일어나고 파리도 안전한 곳이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1940, 맥이웬은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 뉴욕에 정착합니다. 63년만의 귀국이었습니다.

유럽의 미술 시스템 안에서 성공을 꿈꾸었던 세련된 미국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맥이웬은 1943, 여든 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유럽, 특히 네덜란드를 좋아했던 그의 마지막 안식처는 미국이었습니다.

Posted by 공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