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9

« 2019/9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  
  •  
  •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마음에 들어 와서 앉는 순간 회색으로 변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겨울이니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가끔 화려했던 지난 계절들에 대한 기억과 새롭게 들어온 회색이 얽힐 때도 있습니다.

러시아 화가 블라디미르 오를로프스키 (Vladimir Orlovsky / 1842~1914)의 작품을 보고 있는데

머리 속에 있던 회색은 더 짙은 회색으로, 화려한 색은 더 화려한 색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속의 썰매 Troika in the Snow

서쪽 하늘로부터 먹구름이 다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해도 붉은 색 여운을 남기고 구름 속으로 점차 빨려 들어 갔습니다.

저녁이 되면 다시 눈이 시작되겠지요. 내린 눈이 다 녹지 않은 강 둑 위로 썰매가 미끄러지듯 흐르고 있습니다.

트로이카이니까 세 마리 말이 끄는 썰매가 되겠군요.

그냥 서 있어도 추운 겨울 오후, 가릴 것 없는 썰매 위에 앉은 사람들은 얼마나 추울까요?

썰매가 가는 길 앞에 길을 걷는 사람이 보입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썰매를 얻어 타야 할 것 같습니다.

살갗에 닿는 추위는 어떻게든 참을 수 있지만 마음에 닿는 추위는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 기억 납니다.

회색으로 가득 찬 풍경, 따뜻함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오를로프스키는 당시에는 러시아의 영토였지만 지금은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키에프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던 그를 선생님들은 늘 눈 여겨 보고 있었습니다.

키에프 제2중학교에 다닐 때는 선생님들이 상트페테스부르그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 추천서를 써 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입학한 아카데미에서도 그의 재능은 빛났습니다.

 

우크라이나의 A Spring Day in Ukraine / 1882

겨울이 끝나고 찾아 온 봄이 짙어 졌습니다. 눈길 닿는 곳 마다 연두와 초록 세상이 열렸습니다.

여린 풀들이 마치 양탄자처럼 깔린 마당에 겨우내 갇혀 있었을 가축들이 모두 나와 봄을 즐기고 있습니다.

장대를 들고 물을 길러 가는 소녀의 뒤, 어머니는 벽에 등을 기대고 바느질을 시작했습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골의 봄입니다.

마치 거대한 조명을 켜 놓은 듯 그림 속에 빛이 가득합니다. 옅은 안개가 낀 듯한 대기의 묘사는 또 어떤가요?

이런 작품을 만날 때마다 눈이 커집니다.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오를로프스키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타라스 셰프첸코를 만나고 그의 영향을 받습니다.

셰프첸코는 원래 농노 출신이었지만 타고 재능으로 결국은 자유 신분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자신이 태어난 우크라이나에 대한 사랑을 배운 것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재학 중일 때 은메달을 수상한 오를로프스키는 1868, 스물 여섯의 나이에 학교를 졸업하면서 금메달을 수상합니다.

 

 

드네프르 Dnieper

우크라이나를 지나는 드네프르강 옆으로 초원이 펼쳐졌습니다.

초원 위로 난 작은 길, 길 옆으로 흐드러지게 핀 들꽃들은 누구의 돌봄도 없었지만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쇠스랑을 어깨에 맨 소녀가 등장했습니다. 햇빛의 기울기를 보니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 가는 길인 것 같습니다.

그녀의 부드러운 노래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그녀 역시 들꽃처럼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강이 흘러가는 곳은 아득하고 그 위를 떠 가는 배 몇 척, 점으로 멀어지고 있습니다.

아카데미 학생일 때 동료들과 대중들로부터 이미 인정을 받았던 오를로프스키는 금메달과 함께 해외 여행의 장학금도 받게 됩니다.

1869년부터 1872년까지 그는 프랑스와 스위스,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공부도 함께 합니다.

바다의 화가라고 불렸던 아이바조프스키 (http://blog.naver.com/dkseon00/140053373113),

숲의 화가라고 불렸던 쉬스킨 (http://blog.naver.com/dkseon00/140055725990)도 이런 혜택을 받은 화가였지요.

러시아 화가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부문이 가장 부럽습니다.

능력 있는 젊은이를 선발해서 국가가 기르는 것, 꼭 해야 할 일거든요.

 

 

우크라이나 풍경 Ukrainian Landscape

드네프르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한 남자가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앉았습니다.

강 건너 마을은 햇빛 속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고 강은 저 멀리서 크게 몸을 뒤틀며 지평선을 향해 사라지고 있는데,

장쾌하게 펼쳐진 풍경 속에 앉아 있는 사내도 점차 그 속으로 녹아 들고 있습니다.

거대한 바람개비를 달고 있는 건물은 아마 방앗간 같은 건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간혹 이런 풍경 속에 빠져들고 싶습니다.

시선은 거리낄 것 없어 무한대로 뻗어가고 바람 소리, 풀잎들이 서걱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곳,

그 곳에 있으면 온 몸의 세포들이 일제히 깨어날 것 같거든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스부르그의 상류층이 오를로프스키의 주요 고객들이었지만 곧 그의 작품은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얻습니다.

그는 풍경화에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정열을 쏟아 부었습니다.

작품 제작은 아주 신중하고 꼼꼼하게 진행되었고 장식성이 포함되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주 자연스러웠습니다.

동시에 두 가지를 만족시키기 어려운 것을 하나로 묶는 그의 재능은 타고 난 것이 아니었을까요?

 

 

  베는 사람들 Mowers

강 옆으로 꽃밭이 열렸습니다. 오늘은 그 꽃을 베는 날인 모양입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큰 낫을 든 사람들이 꽃을 베어 나란히 밭에 깔아 놓았습니다.

나중에 버리기 좋게 하기 위해서 펼쳐 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날을 손질 하는 사람 옆에 선 여인이 이 밭의 주인인 것 같습니다.

풀을 다 베고 이 곳에 다른 것을 심을 계획인 모양인데 손을 뺨에 대고 있는 모습이 마음이 편치 않은 것 같습니다.

강 옆의 꽃밭도 좋을 것 같은데 그냥 두시지요.

혹시 이런 말을 들었던 것은 아닐까요?

1874, 서른 두 살이 되던 해 오를로프스키는 아카데미 회원이 됩니다.

영국의 로열 아카데미와는 역사가 다르다고 해도 젊은 나이였습니다. 그만큼 그의 재능과 대중들의 반응이 좋았다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2년 뒤, 자신이 졸업한 상트페테스브르그 아카데미의 풍경화 담당 교수가 됩니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 때는 꼭 선생님을 해보고 싶습니다.

 

저녁 Evening

해가 산 너머로 지고 나자 산 그림자가 내려 왔습니다.

하늘에 걸린 구름은 붉은 색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마을 옆을 흐르는 강은 흰 띠로 남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밭에서, 산에서 그리고 저 멀리 강가에서도 집으로 돌아 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집은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친 몸이지만 집으로 돌아 가는 길은 지루하지 않습니다.

예전 완도에서 업무 때문에 6개월을 혼자 산 적이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정말 먼 길이었습니다.

1870년부터 10년간 오를로프스키는 아카데미에서 주관하는 전시회에 빠지지 않고 출품을 합니다.

그는 작품 속에 가을이 오는 신호와 낮에서 밤으로 변하는 순간 같은 것을 기가 막히게 담아 냈습니다.

가을 공기의 신선함이나 저녁의 빛 속으로 스며드는 하루의 마지막 모습 같은 것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들이었지요.

그는 앞서 말한 아이바조프스키만큼 인기있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모래톱 Shoal

제목을 모래톱이러고 붙였지만 우리가 가끔 만나는 모세의 기적같은 길입니다.

깊이가 얕은 바다, 밀물 때 바다가 물러나면서 길이 열리는 곳입니다.

물 속에 숨어 있던 길을 기꺼이 바다가 비켜주는 모습은 과학에 대한 상식이 이유를 설명하지만 여전히 신비롭습니다.

물결의 흔들림과 그 위에서 빛나고 있는 햇빛 그리고 점점 깊어가는 바다의 모습이 이렇게 표현될 수도 있었군요.

도대체 오를로프스키의 표현 능력은 어디까지였을까요?

오를로프스키의 작품에는 빛이 가득한데 낮은 톤으로 표현된 양지와 음지를 조합시켜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또 높은 하늘과 힘있게 솟아 있는 나무를 배치해서 구성에도 깊이를 만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색의 조화를 통해 장식적인 느낌도 더했습니다.

작품의 크기와 사실적인 풍경 모사는 독특한 그만의 스타일로 자리를 잡았고 오를르프스키는 풍경화의 대가로 우뚝 서게 됩니다.

 

추수 Harvesting / 62cm x 100cm / oil on canvas / 1882

누렇게 익은 벌판, 두 여인의 추수하는 손길이 바쁩니다.

아직 거두어야 할 것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데 지평선부터 피어 오르던 구름은 벌써 하늘을 거의 다 덮다시피 했습니다.

짙은 푸른색 구름과 노란 밭이 대비되면서 긴장감이 더 해졌습니다.

이제 그만 하고 돌아 가야 할 것 같은데 그만 하죠?

조금만 더 하고 ---

밭 길을 따라 서둘러 돌아 오는 여인의 모습도 보입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서둘러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걱정입니다.

이 작품은 오를로프스키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회원이 될 수 있게 한 그의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쿠인지 (http://blog.naver.com/dkseon00/140053456108)의 영향을 받은 오를로프스키에 대해 사실적인 러시아 풍경화 분야에서

새로운 지평을 연 화가라는 평가가 주어졌습니다. 아울러 명성이 올라가는 동안 그에게 작품 주문은 계속 되었고 그의 작품을 구매한

사람 중에는 알렉산더 3세도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그의 작품에는 러시아와 그가 태어난 우크라이나의 풍경에 대한 사랑과 찬양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크리마아 수도크 해변 Seashore in Sudak (Crimea) / 1889

흑해 연안의 휴양지로 유명한 수도크 해변에 파도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은 점차 어두워지고 있고 구름이 몰려들면서 바람이 조금씩 거세지기 시작했습니다.

배를 해변 위로 끌어 올리기 위해 남자들이 힘을 쓰고 있습니다. 물결이 더 거세기 전에 빨리 올려야 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맨 왼쪽 남자가 온 힘을 다하는 모습에 저도 가서 도와주고 싶습니다.

문득 올 해 나에게 닥친 파도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그 파도에서 내가 타고 있었던 배는 제대로 지킨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몇 척은 잃어 버린 것 같습니다.

1897, 쉰 다섯이었던 오를르프스키는 장티푸스에 걸립니다.

그리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그가 늘 사랑하고 있던 그의 고향, 키에프로 돌아갑니다.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일흔 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니까 아마 고향에서도 많은 작품을 그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크라이나 풍경 Landscape in Ukraine / 1883

흙먼지 날리는 밭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씨를 뿌리기 위한 작업이겠지요. 계절은 늦은 봄이 아닐까요?

끝이 안 보이는 광활한 대지 위, 생명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겨우내 얼었던 땅에 숨을 불어 넣어 주는 바쁜 손길들이 느껴집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저는 가끔 천리길을 부릅니다. 장발머리였을 때 배운 그 노래 중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간다라는 구절이 제일 좋습니다.

오를로프스키도 그 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우크라이나 –--- 꼭 가보고 싶습니다.

발끝에서부터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펼쳐지는 풍경을 한 작품 안에 담은 오를로프스키가 지금 태어났으면

화가보다는 사진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특히 파노라마 기법이 담긴 풍경 사진에서는 대가가 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차가운 겨울, 지난 계절에 대한 기억들이 가득 떠 오르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Posted by 공말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