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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로버트 워커 맥베스 - 수채화로 시작해서 에칭을 거쳐 유화로 마무리 하다

얼마 전 모 잡지와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화가와 그림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되었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에 제가 집착하는 이유를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세상은 넓고 봐야 할 좋은 작품은 많다였습니다.

뛰어난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구별할 기준이나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의 눈길을 끄는 것은 일단 제게 좋은 작품이 됩니다.

취향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스코틀랜드 화가 로버트 워커 맥베스 (Robert Walker Macbeth / 1848 ~ 1910 ) 그림 속 내용도

저의 호기심을 끌었습니다.

 

 

 

 

 

우리의 번째 말다툼    Our First Tiff / 70.5cm x 106.2cm / oil on canvas / 1878

 

그러지 말고 나 좀 봐요.

됐어.

단호하게 돌아 앉은 사내는 신문을 펼쳐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는 여인은 그리 절박한 표정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싸움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사소한 것을 가지고 사내는 토라졌을 것이고 여인은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에 기가 막혔기 때문입니다.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해요

됐어

여인의 달래는 말에도 사내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여인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습니다.

그냥 놔 두세요. 지금 보니까 신문을 펴기만 했지 읽는 것 같지는 않거든요. 저 나이에는 삐지는 것이 큰 무기가 됩니다.

지금 그 무기를 쓰는 중이니까 그냥 놔 두시면 다시 돌아 올 겁니다. 삐진다는 것은 표현이 서툴다는 뜻이지요. 저도 요즘 자주 삐지거든요.

나이 들면서 표현이 어눌해 지는 것은 어쩔 수 가 없더군요.

그래도 이 번이 첫 말다툼이라니 두 사람 사이가 그 동안 어떠했는지 짐작이 됩니다. 부럽습니다.

 

맥베스는 영국의 글래스고에서 둘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초상화가였는데 어머니는 아버지의 조카였습니다. 이렇다 보니 우리 식 가족 관계로 생각해 보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인 것은 분명하지만 어머니를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되는 셈입니다.

유럽의 왕가에서는 흔한 혼인 관계였지만 그 것은 혈통을 지키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었지요.

맥베스의 아버지가 조카와 결혼 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여유롭게    In Clover / 54.2cm x 87.2cm / oil on canvas / 1879

 

영어 제목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했는데 그림을 찬찬히 보고 나니까 이해가 되는군요.

시골 살림이라고는 하지만 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난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둘러 앉은 여인들과 아이의 표정이 밝습니다.

아마 일을 하다가 새참을 먹기 위해 잠시 모인 것 같은데 쌓아 놓은 풀 더미에 둘러 앉은 여인들은 가지고 온 것을 서로 나누는 모습입니다.

이 정도면 사는 것 그리 팍팍한 것 아닙니다. 가난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것 만큼 부유한 것도 없습니다.

 

맥베스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서 그의 일생을 따라 가는 것은 마치 퍼즐을 맞추는 일 같았습니다.

학교 공부는 에딘버러에서 시작되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근처의 프리드리히스도르프에서도 교육을 받습니다.

행간에 있는 느낌만 가지고 생각하면 요즘 우리나라의 조기 유학 같은 것 아닐까 싶은데, 스코틀랜드 초상화가의 수입으로

그 것이 가능한지는 의문입니다.

 

 

 

 

 

나룻배    The Ferry / 121.9cm x 213.4cm / oil on canvas / 1881

 

건너편 부두를 향해 작은 배가 막 출발 했습니다. 시장을 다녀 오는 듯한 모습도 있고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비록 작은 배이지만 우리 사는 세상을 옮겨 놓은 듯 합니다. 배가 방향을 틀었기 때문일까요, 오른쪽 물결이 크게 일었습니다.

아이들은 긴 장대를 들고 물놀이에 정신이 없는데 남자가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자 저물어 가는 석양 빛을 받으며 여인들이 노래가 그 위에 더해졌습니다. 하루를 이렇게 마감해도 근사합니다.

우리 사는 하루의 끝도 늘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독일에서 돌아 온 맥베스는 왕립스코틀랜드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한 후 스물 세 살이 되던 1871, 런던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 무렵 새로 창간된 그래픽이라는 잡지에서 일을 하며 로열 아카데미에 입학합니다.

화가의 아들로 태어나 이미 미술 공부를 한 그는 또 다시 미술 공부를 시작한 것이지요.

느낌이지만 맥베스는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졸업하고 나면 두 번 다시 공부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 꽤 오래 유지 되었거든요.

 

 

 

 

 

배를 타기에는 늦었어, 노포크 주의 킹스린 항구

Late for the Ferry, King's Lynn, Norfolk / 36.5cm x 58.4cm / oil on canvas / 1881

 

잠깐만요, 배 좀 멈춰요.

아이를 입은 여인이 이제 막 묶인 줄을 풀고 떠나려는 배를 향해 외치고 있습니다.

광주를 든 여인들이 그 뒤를 쫓아 오는데 뒤를 돌아 보는 모습을 보니 아직도 배를 타야 할 사람들이 더 있는 모양입니다.

빨리 와, 배가 떠나려고 해

모두 맨발입니다. 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배가 떠나는 시간에 늦었겠지요. 마지막 배가 아니면 다음 배를 타도 괜찮을 것 같은데

떠나는 것을 보면 마음이 급해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떠나는 배를 보니 이 여인들이 모두 함께 타기에는 작아 보입니다.

혹시 배를 놓쳤다고 서운해하지 마세요. 서두르다가 더 큰 것을 놓치는 경우도 있거든요.

 

맥베스가 초기에 집중한 분야는 수채화였습니다.

1871년부터 맥베스는 로열 아카데미을 비롯 영국 전역의 갤러리와 협회에 작품을 전시했는데, 같은 해 왕립 수채화 협회의 준회원이 되고

1901년에는 정회원이 됩니다. 링컨셔와 섬머셋의 전원 풍경을 담은 작품들이 제작 되었는데 그가 정작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다른 분야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배를 타기에는 너무 늦었어    Too Late for the Ferry / 47.5cm x 65cm / oil on canvas / 1882

 

이걸 어쩌지요 --- 앞 선 작품 속 아이를 업은 여인이 또 다시 배를 놓쳤습니다.

1년 뒤 같은 장소에 같은 인물을 등장시켜 작품을 제작한 맥베스의 속내가 궁금합니다.

출장 중에 기차를 놓치거나 비행기를 놓치는 꿈을 가끔 꾸곤 합니다. 비록 꿈이었다고는 하지만 깨고 나면 기분이 무겁습니다.

안타까움 때문에 꿈 속에서 끓었던 속이 여전히 끓고 있는 듯 하거든요.

기차도 비행기도 다시 탈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정해 놓은 시간을 벗어 나는 것에 대한 순간의 공포가 그렇게 만드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제까지 늦었던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요.

진실을 너무 늦게 아는 바람에 엉망이 된 것도 있고 그래서 떠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에 비하면 배를 놓치는 것, 비행기를 놓치는 것은 조금 불편할 뿐입니다.

 

1880년 이후 영국에서는 에칭 작품이 유행이었습니다.

맥베스는 벨라스케스와 티티아니 그리고 인기 있는 풍속화가였던 프레데릭 워커의 작품을 에칭으로 제작합니다.

판화와 에칭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판매 되었고 프레데릭 워커 이후 가장 많이 알려진

에칭 화가라는 평가도 받게 됩니다.

 

 

 

 

 

06

집시 소녀   Gipsy Girl / 21cm x 30cm / oil on board

 

음식을 만들기 위해 모닥불을 펴 놓은 채 소녀는 지나가던 저를 멍하게 바라 봤습니다. 그녀의 눈빛은 생활에 지쳐 빛을 잃고 있었습니다.

나무에 몸을 기대고 가지를 불에 던져 넣고 있는 소년의 몸짓에서도 나이에 맞지 않게 체념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마을에서 떨어진 이 곳에 남매가 집시 남매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만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피어 오르는 연기 너머로 가을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벌판이 보였습니다.

누군 가에게는 풍요로운 계절이겠지만 남매에게는 그 뒤를 따라 오는 겨울에 대한 걱정이 더 많은 시간이 되겠지요.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기면서 남매에게 줄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타인에 대한 증오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면 가끔은 세상을 상대로 버티면서 살아야 할 때도 있단다. ?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

제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습니다.

 

여러 단체에 가입한 맥베스는 일상의 실제 장면들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고 로열 아카데미에 출품한 작품들 중 몇 점은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1883년에 로열 아카데미 준회원이 된 그는 1903, 정회원이 됩니다.

당대에 이미 사람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던 그는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습니다. 물론 에칭 화가로 얻은 여유였지요.

 

 

 

 

 

주물 편자     The Cast Shoe / 83.2cm x 132.7cm / oil on canvas / 1890

 

조용하던 가게 앞, 작은 소란이 일어 났습니다. 한 사내가 흰 말과 함께 말발굽의 편자를 고쳐달라고 등장한 것이지요.

편자를 고쳐야 하는 기술자는 허리를 숙여 말발굽을 살피고자 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말을 잡고 있는 사내에게 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말을 타던 시절이었으니까 편자를 가는 일은 흔한 일이었겠지만 시선이 모두 말과 사내에게 쏠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빙 둘러 선 사람들의 가운데 위치한 그를 보면 지역에서 목에 힘을 주는사람 아닌가 싶습니다.

혹시 맥베스는 그런 사람에 대한 적당한 야유를 섞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1887, 맥베스는 서른 아홉의 늦은 나이에 연극배우 리디아와 결혼을 합니다. 둘 사이에는 딸이 있었습니다.

그 딸은 훗날 영국의 뛰어난 연극 배우가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의 딸이 사실은 유명한 연극배우 허버트의 딸이라고 수군댔는데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기른 정이 낳은 정 못지 않다는데 늘 한 표를 던지는 저이지만 맥베스에게는 참으로 맥을 빠지게 하는

소문이었을 것 같습니다. 연극배우의 딸은 연극배우가 되고 화가의 딸은 화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행상인   The Ballad Seller / 1902

 

 

천을 파는 행상 여인이 골목길에 등장했습니다.

잠깐 천 좀 봐요.

행상을 세워 놓고 여러 가지 천을 살피는 두 여인이 서 있는 곳의 창틀이 특이합니다.

어머니 옆에서 천을 들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녀의 표정에는 그 나이가 주는 흥분이 어려 있습니다.

아마 고르다가 결국에는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라는 말로 돌아 설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일까요, 행상 여인의 표정은 시큰둥해 보입니다.

장사를 오래 하다 보면 물건을 살 사람인지 아닌 사람인지 구별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래서는 안 될 일입니다.

무엇인가를 판다는 것은 상대의 꿈을 이뤄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을까요?

물론 항상 다 이뤄줄 수는 없는 것이지만요.

 

 

 

 

 

선원이 사랑하는 여인   The Lass that a Sailor Loves  / 69.1cm x 91.9cm / oil on canvas / 1903

 

배가 떠나자 등대 앞에 선 여인의 눈이 커졌습니다. 배 위에 탄 남자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그리고 오래 담고 싶은 까닭이겠지요.

어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 속 여인들에게서는 비장함이 느껴집니다.

바다로 남편을, 아들을 내 보내고 난 여인들의 기다림이 늘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석상처럼 굳은 여인의 몸에서도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떠나지 못하고 늘 이 자리에서 이렇게 가슴 졸이는 것, 우리는 숙명이라고 하지요.

우리의 삶은 그 숙명에서 끝없이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일 수도 있습니다.

 

말년에는 사냥에 취미를 보였던 맥베스는 예순 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화가로서 판화가로서 그리고 에칭 화가로서 한 시절을 풍미했던 그에게는 너무 젊은 나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그림 속에는 수 많은 상상을 만들어 내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올 가을, 또 어떤 이야기들을 그림에서 만나게 될지 저도 궁금합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dkseon00/220161360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