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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에피소드

떡볶이香에 취해서 왔다가 서울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프랑스 만화가 사미르 다마니가 지난 29일 서울 청계천에서 청계천변 풍경을 그린 자신의 스케치북을 펼쳐들고 있다. 지나가던 중국 관광객들도 그의 스케치북을 바쁘게 카메라에 담았다. /김지호 기자


'사미르, 낯선 서울을 그리다' 낸 프랑스 만화가 사미르 다마니

이 프랑스 만화가와 서울 어딘가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다. 지난해부터 만화가 사미르 다마니(32)는 만원 버스와 지하철, 북적이는 시장통과 카페, 청계천과 한강변 등 서울의 일상을 꾸준히 화폭에 담고 있다. 노트 4권을 빼곡히 채운 그의 서울 스케치 가운데 120여점이 최근 단행본 '사미르, 낯선 서울을 그리다'(서랍의날씨)로 묶여 나왔다. 지난해 7월부터 세 차례 한국을 방문해서 1~2개월씩 체류하며 작업해온 그는 이참에 한국에 정착할 요량으로 틈틈이 한국어도 배운다.

치즈로 유명한 프랑스 동부 프랑슈콩테 출신인 다마니는 리옹 대학을 다니던 고고학도였다. 인디애나 존스처럼 세계를 누비는 모험가를 꿈꿨지만, 그는 "흙에 묻힌 밥그릇, 깨진 접시와 벽돌 맞추기에 지쳐갔고, 2년 만에 고고학에 대한 애정도 미련 없이 땅에 묻었다"고 했다. 대학을 그만둔 그는 고향 수퍼마켓에서 새벽 5시부터 낮 12시까지 꼬박 1년간 점원으로 일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프랑스의 만화 도시 앙굴렘의 고등이미지학교에 다시 들어갔다. 여기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들이 인생 경로를 바꿔놓게 될 줄은 자신도 몰랐다고 했다.

지난 29일 인터뷰에서 다마니는 "나를 서울로 끌고 온 건 떡볶이의 향(香)"이라고 말했다. "한국 친구들이 요리해준 떡볶이의 맵고 자극적인 고춧가루 향을 맡는 순간,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사진과 그림, 전통문화에 관한 자료를 인터넷으로 뒤적였고, 지금은 떡볶이와 닭강정, 김치는 스스로 요리해 먹는다. 당초 뉴욕행을 꿈꿨던 이 만화가의 '항로'도 서울행으로 변경됐다. 지난해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해외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당선된 이후, 프랑스와 한국을 넘나들며 작업 중이다.

지난해 7월 첫 방한(訪韓) 당시 인천공항의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 가장 먼저 놀랐던 건 여름의 무덥고 습한 장마였다. 다마니는 "장장 몇 시간 동안 쏟아져 거리를 온통 물바다로 만드는 괴물 같은 장마는 폭우(orage)나 악천후(intemprie) 같은 불어로는 도무지 설명 불가능했다"면서 "하룻밤 사이에 낯선 이방인이 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외국어를 몰라도 스스럼없이 한국어로 말을 건네고, 소주에 안주까지 대접하지 않으면 인심 야박하다고 여기는 한국인 특유의 정감에 조금씩 반했다고 그는 말했다. 쏘가리를 잡고 싶어 금강(錦江)에 내려갔다가 인근 낚시꾼들에게 고기와 술을 대접받은 적도 많다.

다마니는 "한국인들은 가끔 지나치게 간섭하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후하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거리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북촌과 인사동, 가장 좋아하는 레스토랑은 활력이 넘치는 '포장마차'다. 거기에 비하면 파리의 명물인 카페는 조금 심심한 편이란다.

'탱탱' 시리즈로 유명한 벨기에의 만화 출판사 카스테르망과 최근 계약한 그의 다음 프로젝트는 프랑스에서 공부한 한국 유학생들이 귀국한 뒤 느끼는 감정들을 소재로 한 '귀환(歸還·가제)'이다. 11월 11~30일 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에서는 그의 서울 스케치 원화(原畵)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도 열린다.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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