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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하리어트 바케르 - 19세기 유럽의 여류화가의 선구자

산업혁명의 물결이 휩쓸고 있던 19세기의 유럽,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여류 예술가를 만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사회는 아직도 여성에게 보수적이었고 예술의 주체보다는 대상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강했지요.

그런 와중에도 화가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류 화가가 있습니다.

노르웨이 출신의 하리어트 바케르 (Harriet Backer / 1845~1932)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참 오랜만에 만나는 여류화가입니다.

 

 

옅은 색의 목초지 위에서 On the pale meadow / 1886~1887

마치 연두색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한 목초지에 여인들이 등장했습니다. 통 안에 든 것이 빨래였군요!

바지랑대를 세우고 빨래 줄을 걸고 그 위에 널기에는 너무 길어 목초지로 가져 나온 것 같습니다.

풀 위에 길게 펼쳐 놓은 다음 다 마르고 나면 툭툭 털어 접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딸들이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얼굴이 조금 힘들어 보입니다. 사실 빨래만큼 힘든 가사 노동도 많지 않습니다.

세탁기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진정한 여성 해방의 시대가 왔다고 했는데, 세탁기가 넘쳐나는 지금,

정말로 여성들이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림이지만 초록을 보니 살 것 같습니다.

바케르는 노르웨이 홀메스트란 이라는 곳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열 두 살 때 오슬로로 이사를 가는데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녀에 대한 미술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감안한다면 그녀에게 이런 교육의 기회가 마련된 것도 집안의 경제력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했었겠지요.

 

 

 

푸른 실내 풍경 Blue Interior / 84cm x 66cm / 1883

빛이 드는 큰 창을 앞에 두고 바느질 하는 여인의 모습 주변은 온통 푸른 색입니다.

의자와 커튼 그리고 여인의 옷까지 같은 색 계열입니다.

여인의 뒤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고 그 것을 통해 비쳐진 실내도 푸른색이 감돌고 있습니다. 마치 깊은 바닷속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그 느낌은 어둡다기 보다는 정갈합니다.

녹색의 화분과 붉은 색 칠을 한 책상 그리고 실내 깊숙한 곳까지 찾아 들어 온 빛 때문이겠지요.

고요한 실내에 간혹 여인이 옷감을 뒤척이는 소리만 들리고 있습니다.

바케르의 미술교육은 상당 기간 계속됩니다.

유명한 화가들에게서 드로잉과 회화를 배운 후에 미술학교에 입학해서 4년간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스물 아홉의 나이에 독일의 뮌헨으로 건너간 그녀는 4년간의 공부를 끝냅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 번에는 파리로 건너가 레옹 보나와 르파주에게서 그림을 배웁니다.

정말 대단한 집념이었습니다.

 

 

 

 

동네 구두 수선공 Country Cobblers / 1887

두 남자가 창가에 놓인 테이블 앞에 앉아 구두를 고치고 있습니다. 바닥에는 수선을 해야 할 구두 한 짝이 보입니다.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은 기술자이고 그 옆에 앉은 소년은 견습생이 아닐까요?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구두를 수선하는 곳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도구도 있어야 하고 수리를 맡긴 구두들도 보여야 하는데 아주 말끔합니다.

마치 가정집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구두 고치는 법을 알려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수선하는 곳이라면 어떤 상태의 구두를 맡겨도 말끔하게 처리해 줄 것 같습니다.

정리 정돈된 상태를 보면 주인의 성격이 아주 꼼꼼할 것 같거든요.

파리에서 10년간 머무는 동안 바케르는 인상파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사실주의 계열로 분류되지만 때에 따라서는 자연주의와 초기 인상파로도 분류가 됩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어느 화파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주의 전통 안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하는데 제 생각에는 그녀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렸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화풍이라는 것도 결국은 또 하나의 제약일 수 있거든요.

 

램프 옆에서 By lamp light / 1890

밤이 깊었지만 램프를 켜 놓고 책상에 앉은 여인은 점점 더 책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여인의 등 뒤에 서 있는 그림자도 책을 힐끔거리며 넘어다 보고 있고 벽에 붙은 난로에는 탁탁 소리를 내며 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여인의 머리 위에는 멋진 모양의 커튼이 달려 있습니다.

이따금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실내,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도 들리는 듯 합니다.

학생 때 겨울이면 스탠드를 켜 놓고 이불 속에서 책을 읽던 생각이 납니다.

책이 펼쳐주는 환상의 세계 속에 들어 갔다 나올 때마다 조금씩 마음이 커졌었지요. 바케르 최고의 작품 속에서 그 시절이 떠 올랐습니다.

바케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색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사용할 것인가, 빛이 사물에 어떻게 떨어지는 가에 관한 것이었고

이런 것들은 그녀의 작품에 그대로 표현되었습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에도 노르웨이에서 여름을 보냈던 바케르는

피아니스트인 동생과 함께 유럽 전역으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런 중에도 그림 수업을 들었다고 하니까 배움에 대한 열정은 제가 이제까지 읽은 화가 중 최고입니다.

 

바느질 하는 여인 Kone som syr / 1890

19세기 그림 속 바느질 하는 여인은 정숙함의 상징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인상파 화가들에게는 그런 것을 떠나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겼고 그림의 소재였지요.

여러 가지 색이 조화를 이루면서 바느질 하는 장면이 아주 경쾌하게 다가 왔습니다.

푸른색과 붉은색 그리고 흰색이 적절하게 자리를 잡아 말끔한 느낌도 더해졌습니다.

바느질을 하는 그림을 볼 때마다 예전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이 떠 오릅니다. 저녁이면 바느질을 자주 하셨지요.

제 아내나 딸이 바느질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바느질을 하라고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잊어 버릴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서른 다섯의 늦은 나이에 데뷔를 한 바케르의 작품 제작 방법은 당대 외광파의 기준이 될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림에 담고자 하는 대상 앞에서 직접 선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어떤 빛이 적절한지에 대해 심사 숙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끝날 때까지 매일 같은 시간에 대상 앞에 서게 되었죠.

그녀의 작품 중에는 완성될 때까지 몇 년이나 걸린 것들이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바케르는 집중력도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연주하는 오빠 Storebror spiller / 1890

피아노를 연주하는 오빠 옆에서 동생은 턱을 괴었습니다. 귀는 오빠가 연주하는 소리에 젖었고 눈은 오빠에게 고정되었습니다.

엉거주춤한 오빠의 자세를 보니 상황이 짐작이 됩니다.

아마 동생이 피아노를 치고 있었겠지요. 자꾸 틀리는 부분이 나오자 오빠가 시범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봐도 피아노 의자가 오빠에게는 턱없이 작아 보이거든요.

세상 끝나는 날까지 지켜 주어야 할 대상 중 여동생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오빠들의 마음은 세상 어디에 가도 대개 비슷하지 않을까요?

피아노 위에 올려 놓은 촛대 두 개, 그림 속 두 사람처럼 참 예쁘군요.

파리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마흔 셋 되던 해 바케르는 노르웨이로 귀국합니다. 이미 노르웨이에서 그녀의 명성은 대단했습니다.

젊은 화가들에게는 영향력 있는 선배였습니다.

정교한 실내 풍경과 풍부한 색상 그리고 분위기 있는 빛이 그녀의 작품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1889년 그녀는 만국박람회에서 은메달을 수상하게 되는데 이후 그녀는 여러 종류의 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타눔 교회에서의 세례식 Baptism in Tanum church / oil on canvas / 1892

왜 아직 안 오는 거야? , 저기 오네!

고개를 돌린 여인의 얼굴에 초조함이 묻어 있습니다. 이제 막 아이를 안은 여인이 교회 입구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아마 유아세례를 받으러 오는 날인 것 같습니다.

아직 청정무구한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어 세례를 받는가 하는 분들도 있지만 아이에 대한 신의 은총을 기원하는 것이라고 보면,

부모들이, 어른들이 해 줄 수 있는 것으로는 최고의 것 중 하나가 되겠지요. 그림을 보다가 잠시 마음 끝을 살펴 보았습니다.

세례를 받았을 때의 마음이 떠 오릅니다. 앞으로는 꼭 제대로살겠다고 다짐했는데 이제는 희미해졌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끝도 많이 너덜너덜해졌습니다. 하느님께 수선을 부탁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마흔 넷이 되던 1889년부터 예순 일곱이던 1912년까지 바케르는 미술학교를 운영합니다.

이 학교는 노르웨이 미술 교육의 중요한 부분을 맡았고 젊은 화가들에게는 큰 영향을 준 곳이었습니다.

그녀의 작품들은 노르웨이 미술계의 중요한 작품들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화가로서 학교 운영자로서 활약하던 그녀는 여든 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북구는 물론 유럽에서도 선구적인 여성화가로 불릴 만큼 충분히 자격이 있었던 그녀였습니다.

 

유브달 스타브 교회의 실내 풍경 Interior from Uvdal Stave Church / 1909

노르웨이에 있는 유명한 유브달 스타브 교회의 실내 풍경입니다.

가운데 커다란 기둥이 있고 양쪽으로는 신자들을 위한 의자가 있습니다.

전면에는 제대가 있는데 제대를 둘러싸고 천장까지 이어진 벽면 장식이 아주 특이합니다.

붉은색으로 구획을 나눈 것이라던가 천장의 장식은 유럽의 다른 교회와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모습입니다.

더구나 의자 옆에 초록으로 채색되어 있는 장식은 붉은색과 어울려 강렬한 원시성도 느끼게 합니다. 예사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데 통로에 앉아 있는 여인이 보입니다. 양쪽으로 앉은 신자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자리가 없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조금 더 신의 말씀을 가까이 듣기 위함일까요? 어디에 앉는 것이 문제이겠습니까? 결국은 마음의 문제이죠.

빛은 제단에도 그녀에게도 아낌없는 은총을 내리고 있습니다.

성가대 활동을 하다 보니 성탄을 앞두고는 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연습 시간도 길어졌고 그 사이 사이 사람들과의 인연 때문에 기웃거려야 할 곳도 많습니다. 내일이 성탄 전야입니다.

모든 분들께 평화가 함께 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