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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제임스 티소 -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다

예전에 음악가들의 아내라는 제목으로 음악의 뒷골목에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대개 괴팍스러운 아내들의 이야기였지만 예술가 옆에는 특이한 여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모딜리아니의 아내 쟌느 에퓨테른느가 가장 기억에 남지만 사랑하는 여자로 인해 인생이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임스 티소 (James Tissot / 1836~1902)도 그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이 근무하는 미국인 동료에게 제임스 티소의 이름을 보여주고 발음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미국 이름이

아니고 프랑스 사람 같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그냥 알 수 있다고 하면서 티소 (Tissot)

맞는다고 합니다. 예리한 친구 같으니라고 ----. 맞습니다. 그는 프랑스 화가입니다.

 

 

 

 

(10October / 1877)

 

 

제목을 보지 않아도 10월입니다. 치마를 살짝 걷고 숲으로 들어가는 여인 뒤로, 햇빛으로 가득한 노란

단풍잎들이 모두 조명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여인의 얼굴 선이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옆구리에 책을

끼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나무 밑에 앉아 편하게 책이라도 볼 요량인 것 같습니다만 엉거주춤한 자세로

봐서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긴, 가을 속에 있는 여인의 마음을 무슨 재간으로 읽을 수 있겠습니까 ----.

 

 

 

 

(점심Un Dejeuner / 1868)

 

 

항구 근처의 야외 식당입니다. 한 상 잘 차려 낸 식사를 끝내고 커피를 마시는 중입니다.

남자는 이야기 보다는 여인의 자태에 빠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왠지 자세가 바뀐 것 같아서

낯 선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습니다. 대개 남자가 몸을 뒤로 젖히고 여인이 턱을 괴고 있는 장면이

일반적인 것 같은데 이 두 사람은 그 반대입니다. 더구나 여인의 옷차림은 가벼운데 남자의 옷차림은

중무장에 가깝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인의 무릎 위에 앉은 강아지와 눈이 맞았습니다.

강아지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 별 생각을 다하네 ----- ’ .

제임스 티소의 프랑스 이름이 있지만 제가 읽을 자신이 없습니다. 티소는 프랑스 낭트에서 중류층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에 대한 유년 기록은 거의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정보로는 파리로 가서 미술학교에 입학한 것이 처음 나타나는 기록인데, 파리에서는

드가, 마네와 함께 한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쟁쟁한 친구들이군요.

 

 

 

 

 

(교회에서In Church / 1869)

 

고해소 앞이 아닌가 싶습니다. 뒤 쪽으로는 고해소로 들어가는 여인이 보이고 노인은 장궤를 하고

있습니다. 남루한 옷차림과 피곤한 얼굴의 노인의 기도는 간절한데 대조적으로 젊은 여인은 무표정한

얼굴입니다. 의자를 밀어 젖힌 여인의 손과 노인의 손이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습니다. 너무 당당한,

그러나 너무 차가운 여인은 얼굴을 돌리고 있습니다. 보고 싶지 않겠지요. 몇 십 년 뒤 옆에 있는

노인이 된다는 것을 그녀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외면하면 모든 것들이 그냥 지나치던가요 ------ .

아내가 한 마디 했습니다. ‘ 그 여자 상복 입었네. 옆의 노인은 시어머니고 ----‘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드가가 티소의 초상화를 그릴 정도로 드가와는 꽤 친한 사이였는데 나중에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둘이 크게 싸웠고, 티소는 인상파 전시회 참가도 거부합니다. 애들처럼 -----.

 

 

 

 

 

(작별The Farewell / 1871)

 

 

세상에 슬프지 않은 이별은 없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이별은 다시 돌아 올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지만, 같은 하늘 아래에서 만나지 못하는 이별은 시간이 흐를수록 목을 마르게 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 있는 쇠로 된 벽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서로의 표정은 비장합니다. 왜 티소의

그림 속 남자들은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여인의 치마에 달린 가위를

써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가위가 분명한데, 저 용도는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가 없습니다.

1871년 보불 전쟁이 끝나고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파리코뮌 정권이 들어 섰지만 바로 정부군의

역습으로 정권이 무너지고 3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합니다. 파리코뮈의 지원자로

의심을 받은 티소는 체포를 피해 영국 런던행 배에 몸을 싣습니다. 파리와의 작별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An Interesting Story / 1872)

 

 

붉은 옷의 사내는 지도를 펴 놓고 신이 났지만 이야기를 듣고 있는 두 여인은 죽을 맛입니다. 한 여인은

아예 다른 곳을 보고 있고 또 한 여인은 하품을 억지로 참느라 손가락으로 입을 막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면 군대 이야기쯤 되는 것 같습니다. 3년 군생활 하고 30년을 이야기 한다는,

그 무궁무진한 이야기 창고 말입니다. 세상 모든 여인들은 같은 생각인 모양입니다.

학교를 졸업한 티소가 처음 손 댄 분야는 역사적인 장면의 묘사였는데 곧 바로 파리의 여인들의

모습으로 주제를 옮겼고, 그의 작품은 미술품 수집가들로부터 인기가 높아서 돈도 꽤 모았습니다.

그러나 파리코뮌 사건이 발발하자 그는 영국으로 도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국에 도착해서는 이름을 영국식으로 제임스라고 바꾸고 영국 사람들 기호에 맞는 초상화를 그려

곧 바로 인기를 얻습니다.

런던에서 그는 그의 인생을 바꾸게 만드는 한 여인을 만납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캐틀린 뉴튼Katheleen Newton In an Armchair)

 

티소가 이혼녀인 캐틀린 뉴튼을 언제 어디서 만났는지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그녀에 관한 것도 그녀의

집안에서 감추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공개한 것입니다. 잠깐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아일랜드 출신의 군장교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17살이 되던 해 인도에 있는 군의관과 결혼을

시킵니다. 결혼을 위해 영국에서 인도까지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이 철없는 아가씨가 그만 선장하고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낯 선 배 안에서 몇 달을 같이 있다 보면, 더구나

선장쯤 되는 남자라면 사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17살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

 

 

 

 

 

 

(내 사랑Mavourneen / 1877)

 

 

티소의 유일한 여인이었던 캐틀린입니다. 티소의 그림 속의 가장 많은 모델이었고 신비스러운 매력을

가졌다는 여인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한참 그녀를 드려다 보고 있으면 허전함이 느껴집니다.

인도에 도착한 캐틀린은 뉴튼과 결혼식을 올리지만 결혼식 직후 선장과의 관계에 대해서 남편에게

고백을 했습니다. 남편에게 돌아온 답은 즉시 이혼이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영국으로 가는 배에 올라야

했고 영국에 도착한 후 선장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 고백 안 할 수가 없었겠네요.

 

 

 

 

 

(파라솔을 든 뉴튼 부인 Mrs. Newton with a Parasol / 1879)

 

 

일본풍의 우산을 든 캐틀린 모습을 번잡한 배경 없이 처리했습니다. 덕분에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이

깔끔하게 드러났지만 2% 비어 있는 듯한 표정은 여기서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캐틀린은 티소의 아이를 낳은 후 그녀가 낳은 선장의 아이와 함께 아예 티소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때가

티소가 영국으로 넘어 온지 5년이 되던 1876년이었습니다. 그녀와 함께 살았던 시간이 티소의 일생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친구들을 초대하는 경우도 거의 없이 오직 둘 만 살았습니다.

정말 사랑했었나 봅니다. 그러나 1882년 캐틀린이 28살 그리고 티소가 46살이 되던 해, 그녀는 폐결핵

말기를 비관, 자살하고 맙니다. 티소의 행복한 생활은 거기까지였습니다.

 

 

 

 

 

(너무 일찍 왔네Too early/ 1873)

 

 

작은 실내 음악회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한껏 멋을 낸 사람들이 옹기 종기 모여 있는데 너무 일찍

도착했습니다. 맨 오른쪽 남자는 기다리기 지루했던지 허리를 벽에 기대고 있습니다. 곧 도착할 사람이

오늘 모임의 주인공인가 보죠? 모두들 출입문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특히 안 쪽의 방에서 고개를 살짝

내민 두 여인의 모습이 작품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티소가 영국 상류 사회를 묘사한 그림 중 처음으로 크게 그린 것이었습니다. 미술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평가도 받은 작품이었는데 이와 같은 대작을 연작으로 발표합니다.

 

 

 

 

 

(!Hush / 1875)

 

 

이제 막 연주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도대체 분위기가 잡히지 않습니다. 화면 가운데 연주자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고요함이 있는데 왼쪽은 소란스럽습니다. 이국적인 복장을 한 사람도 눈에 띄는 것을 보면

그래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의 모임인 것 같은데, 왼쪽의 여인은 연주자의 자세와 관계없이

아예 몸을 돌리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연주자의 얼굴입니다.

벌떡 일어나서 ---‘ 하고 싶습니다.

티소의 작품은 많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나 러쉬킨 같은 당대의 평론가들로

부터는 모진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상스러운 부자들의 총천연색 사진을 보는 것 같았다는

비평 이었는데, 비평가들이야 뭐라고 하던 그의 그림은 계속 잘 팔려 나갔습니다. 이 것이 또한 파리에

있던 인상파 동료들의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거기나 여기나 사촌 때문에 배 아프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선상 무도회The Ball on Shipboard / 1874)

 

 

아래층에서는 한참 무도회가 열리고 있는데 바다 바람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갑판으로 나왔습니다.

어떠신가요? 뜨거운 열기라도 확확 뿜어져 나와야 할 갑판에는 이상한 분위기가 떠 있습니다. 어수선

하지만 따분하고 여인들의 모습도 생기가 있다기 보다는 정물 같은 느낌입니다. 관객을 향해 멍한

눈으로 보는 여인은 무도회가 그리 탐탁한 것 같지 않습니다. 티소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겉은 화려하나

새 장 속에 갇힌 빅토리아 시대의 여인들의 모습이었다는 평론가들의 말이 이해됩니다.

사실 갑판 위에 매력 있는 남자도 없지만 말입니다.

 

 

 

 

 

(템즈 강The Thames / 1876)

 

 

템즈강을 따라 가는 보트 여행입니다. 강 옆에 정박 중인 배에서는 거대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하늘은 온통 스모그로 덮여 있습니다. 강물도 회색입니다. 짐을 올리고 내리는 인부들의 고함소리도

배가 강물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고 있습니다. 고개를 돌리고 있는 무표정한 여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가운데 앉아 있는 조그만 강아지가 저에게 또 한마디 했습니다.

신경 끄셔. 마음도 심란한데 ----‘

템즈강은 그가 영국에서 사는 동안 즐겨 찾았던 그의 주제였습니다.

캐틀린이 세상을 떠나고 나자 티소는 런던에 있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캐틀린이 죽고

5일 후 티소는 모든 것을 그대로 놔두고 파리로 떠나는데, 집은 나중에 화가 알라 타테마가 구입합니다.

옆에 있던 아내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한 마디 했습니다.

애들은 어떻게 했어?’

아이들에 대한 기록은 없었습니다.

 

 

 

 

 

(마음의 평화Quiet / 1881)

 

 

아이가 모델을 하다가 지쳤습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심통도 부려보지만 그 옆에 엄마는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아내 캐틀린과 아마 그의 딸이겠지요. 그림들을 보다 보면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마음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 그림은 정말 따뜻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캐틀린에 대한 티소의 사랑의

정도를 시간과 공간을 건너 뛰어 제가 알 아 챌 수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티소는 죽을 때까지 어떤

여자와도 로맨틱한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다고 했는데 잘 참으셨습니다. 티소 선생님 ---.

 

 

 

 

 

(책 읽어 줄게Reading a Story / 1879)

 

 

책을 읽어 주는 엄마보다 고개를 들고 이야기에 빠져 든 아이에게 눈길이 갑니다. 책 장을 넘기는

엄마는 손가락으로 애정과 여유로움을 함께 넘기고 있습니다. 바라보는 저도 기분이 좋은데 소는

얼마나 좋았을까 싶습니다.

 

 

 

 

 

(야심많은 여인A Woman of Ambition / 1885)

 

 

한 눈에 도 범상치 않은 여인이 남자의 남편의 팔을 끼고 입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오른쪽 남자는 누군가에게 귓속말을 하는 중입니다. 좋은 이야기는 아닌 듯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 뒤에서 하는 이야기가 좋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왼쪽 남자는 노골적으로 경멸의

눈빛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에게 팔을 내어 준 남자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상상할

수는 있습니다. 늙었지만 돈은 많고 직위도 높은 사람일 것이고, 이 여인은 물 불 안 가리고 저 남자의

팔을 낄 수 있는 자리를 잡았겠지요.

그러나 여인은 주위의 수군거림에 전혀 신경 안 쓰는 표정입니다. 역시 ----- .

파리로 돌아온 소는 3년 정도 파리의 생활을 화폭에 옮깁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 갔다가

갑자기 이상한 체험을 하고 난 후 종교화에 헌신하기로 결심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남긴 구약과 신약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수채화가 700점에 달합니다.

무슨 체험이었을까요?

 

 

 

 

 

(우리 구세주가 십자가에서 내려다 본 것은What our Savior saw from the Cross)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 내려다 본 풍경입니다.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예수님 발 아래로 성모 마리아와 막달레나 마리아가 있습니다. 신포도주를 적셔 주었던 장대도

보입니다. 소리를 지르고 있는 유대의 제사장들도 있고 걱정스러운 듯이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충격은 고흐 박물관에 걸려 있던 장 레옹 제롬의 골고타를 본 이후 처음입니다.

루벤스의 십자가 책형이 극적인 장면을 묘사해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화가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화면에 묘사했기 때문에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안쓰럽고 안타깝고

무서운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죄인의 마음이 됩니다.

이 작품에서 몇몇 여인을 제외하면 모두가 방관자의 자세로 올려다 보고 있습니다. 육신의 고통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이 일과 자신은 관계가 없다는, 이 일은 당연한 결과였다는 듯이 올려다 보는

사람들의 눈 빛에서 인간 예수는 더욱 큰 고통을 받았겠지요.

나는 어떤 눈 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걸까요? 시점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그림뿐일까요----.

 

 

(정원 벤치The Garden Bench / 1882)

 

 

티소는 프랑스 화가이지만 프랑스로부터는 너무 영국적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의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의 작품들은 고가로 팔렸습니다.

또한 그가 그린 종교화는 그 때까지의 상투적인 표현에서 벗어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대한 비평은 아직도 냉소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최근 그에 대한 흥미가 높아지면서 그에 관한 책과

전시회가 활발하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비평가와 대중은 무엇이 다른 걸까요? 그림이 갖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늘 어렵습니다.